서 론
특수학교의 체육교과과정 검토
일제강점기 특수학교 체육교과과정 분석
濟生院規程이 公布되다. 내용은 고아, 맹아, 瘋癩者의 교양 구호와 의료를 목적으로 하고 총독 예속하에 京城에 本院을 두며 필요에 따라 각지에 분원 또는 파출소를 두기로 되어 있다(Maeil Sinbo Newspaper, 1911; Joseon Government General, 1911).
이 세상에 누가 불상하니 누가 불상하니 하야도 압 못보는 사람처럼 불상한 사람은 업슬 것이다. 다가튼 사람으로도 눈 한가지가 업는 까닭에 남과 가티 光明한 天地를 보지 못하고 다만 暗黑한 속에서 音響과 觸覺으로 이세상의 사물을 감각하고 인식하야 生을 보존할 따름이엿다. 沈淸이 가튼 효녀를 저마다 두엇스면 엇덜지 모르지만은 그럿치 안은 이상에는 아모리 천재가 비범한 인물이라도 공부하랴 할수가 업고 따라서 벌어먹을 길도 업다. 그러함으로 이때까지 그들의 배우고하는 직업이라는 것은 다만 迷信的의 問卜이나 經을 읽는 것뿐이엿다. 그것도 넉넉한 사람은 자기집에 잇서서 그런 일을 하지만은 그럿치도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세발막대를 맛아들보다 더 중히 녁이고 압장을 삼어 路上으로 도라다니며 고함을 치고 問卜하기를 애원하다가 엇던 때에는 不良少年들에게도 『장님XX이 몃쪽이요...』하는 嘲笑까지 바더가며 가련한 일생을 보냇다. 그러나 文明의 恩澤은 그이들에게도 밋처서 아모리 눈이 업는 그들이라도 보통사람과 다름업시 눈을 뜨고 살게 되엿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안이라 곳 點字法이다.(紙面에 뚤인 구녕을 손으로 집허 글자 알어내는 법) 이 點字法은 약 100년전에 佛蘭西사람의 푸레유-氏가 綴字法과 그 기계를 발명하고 그후 30년쯤 뒤에 미국인 뉴요-크氏가 거의 가튼 기계를 발명하얏스나 뉴요-크氏 式은 미국 한 부분에서만 사용하고 푸레유氏 式은 세계각국에서 가티 사용되여잇다. 현재 조선에서도 이 綴字法을 朝鮮文과 日本文으로 고처서 온갓 학문을 가르키고 잇다. 이외에 數字-이것은 어느 나라든지 가튼 綴法 -와 영어, 불어, 독어도 넉넉히 배흘 수가 잇는 것이다. 盲人에게도 이러한 光明이 잇는 것을 모르고 비관과 한숨으로 지내는 이가 얼마나 만흔가. 그러나 이제로부터 이러한 것을 몰랏든 사람은 빨이 이 光明을 차저볼 것이다. 벌서 그들은 不具를 탄식하고만 잇슬 때가 안이다. 그들도 완전한 지식을 엇고 완전한 사람이 되게 되엿다. 이제 點子二三字를 참고삼아 드러보련다! 조선에도 그들을 위하야 훌륭하고 고마운 기관의 설비가 잇슨지 오래엿스니 이는 곳 서울 天然洞에 잇는 濟生院盲啞部가 그것이다! 이제 全朝鮮 사람의 盲者의 統計를 적어봄도 無味한 짓이 안일가한다. 數 적은 조선사람 중에 얼마나 만흔 사람이 光明을 못보고 어두움에서 우는 것을 보라. 全朝鮮人의 盲者 數는 1만1천85인이며 이것을 道別과 男女別로 보면 다음과 갓다.(再昨年 5월 現在) 여자가 남자보다 소수인 것을 알 수가 잇스나 그 원인은 물론 알기에 힘들 것이다. 또 年齡으로 보면 비교적 長壽者가 만흐며 調査에 의하면 80세 이상의 수명을 가진 사람이 204人을 算한다. 그러고 대다수의 연령은 36세 이상 40세 이하로 결국 중년에 속하는 健全한 일ㅅ군이 될 사람이 만흔 것을 발견하엿다(Park, 1929).
이제 새 희망을 가지고 배호고저 하는 이의 입학과 졸업후의 직업을 소개하려 하며, 盲生科와 啞生科가 잇스나 啞生部의 대한 것은 달니 소개하겟기 여긔에 略하고 盲生科에 대한 것만을 소개한다. 입학에는 특별한 시험은 업스나 건강에 대하야는 조건을 부치고 엄밀한 검사를 하야 입학 후에도 不健康한 상태를 발견하거나 성적이 劣等하야 장래의 희망이 업다고 認定하는 자에게는 부득이 퇴학을 식히는 수가 잇다 하며, 연령은 특별한 제한이 업고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입학된다. 修業年限은 啞生科는 5개년이요 盲生科는 3개년이라 한다. 盲科에는 生徒의 연령이 대개 만흠으로 이해력이 양호하야 修業年限이 3개년이라고 하지만 日語와 家科에 대한 技術의 연습에 주력을 함으로 제1학년 2학기에는 쉬운 대화는 능히 할 수가 잇고 제2학년에서는 學科로는 鍼按과 맛사-지를 배호고 제3학년에 이르면 授業時間에 實地練習을 目的하야 일반에 需應하야서 기술의 연습과 普通禮法의 實際에 熟練하도록 한다. 敎授科目으로는 修身, 朝鮮語, 日語, 算術, 唱歌, 體操, 鍼按맛사-지 等을 가르키며 주로 졸업후의 직업을 위하야 기술을 가르킨다. 입학을 한 후에 넉넉히 自費로 통학을 할만한 사람이 못되면 給費의 制度가 잇서서 給費生은 전부 기숙사에 수용하야 食料와 用品을 주는 이외에, 입학 퇴학 혹은 夏季休暇에 鄕里에 도라가는 사람에게는 그 旅費에 상당한 금액을 주어서 貧窮한 학생의 편의를 보아준다. 그러나 給費生이라고 졸업후에 무슨 의무가 잇는 것이 안이라 全然 救濟의 목적으로 수용한다고 한다. 昭和三年년 3월말 현재의 給費生은 盲生이 23人 啞生이 14인이라 하며, 盲生의 현재 졸업생 중에는 總督府醫院과 道立病院에서 「맛사-지」 技工으로 재직중에 잇는 사람이 4人인 바, 月額이 38圓 이상 40圓이나 되고 근무후에 自宅에서도 10數圓의 收入을 어들 수가 잇고 또 都市에서 自營하는 자는 월수입 30圓으로 80圓까지나 되여서 상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만코 敎職에 從事하는 사람도 잇다고 한다(Park, 1929).
필자는 手舞足蹈하면서 부친께 盲啞學校에 입학을 청하엿드니 즉시 허락을 하심으로 京城府 西大門外의 濟生院盲啞部에 입학하야 4년 修了하고 再次 일본에 東京聾啞學校高等部를 졸업하야 지금은 타인과 如何한 筆談이든지 용이함을 歡喜한다. 然이나 조선에서는 聾啞社會를 위하야 如何한 직업에 취직할 기관이 無함을 유감으로 아는 바요, 만일 聾啞者로써 교육을 不受하면, 의사의게 진찰을 受하든지 도난을 당할 時나 혹은 경찰서에 如何한 관계가 有하든지 裁判等이 有할 時에라도 實情을 타인의게 충분히 호소치 못하니 其 곤란과 실패를 感하는 啞 本人과 其親族의 心痛은 형언키 難하니 실로 가련하고 한심하다(Kim, 1929).
해방이후 특수학교 체육교과과정 분석
인왕산 밑에 안윽히 자리잡고 있는 국립맹아학교(國立盲啞學校) 정문에 들어섰습니다. 운동장이라기보다 정원(庭園)이라는 느낌을 주는 교정(校庭) 이곳저곳에 남녀 아동들이 명랑 경쾌하게 뛰놀고 있섰읍니다. 그러나 도무지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안습니다. 마치 무성영화(無聲映畫) 보는 듯 그러니까 이 애들은 아생(啞生)인 것이였습니다. 사무실을 안내해 달라고 그중에서 큰아이에게 말로하였드니 그애는 알어채리고 긔자에게 따라오라는 것을 손짓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교장선생은 자리에 없다는 것이 었읍니다. 교수참관도 좀기다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기다리는 사이에 서무(庶務)보는 선생에게서와 그학교에 十五년 근속하여 근속하여 맹아생(盳啞生)의 아버지라 일컽으는 전주동(全主東) 선생게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었읍니다. 즉 재적아동수(在籍兒童數)는 三百六十명인데 맹생(盳生)아 국민과(國民科) 二十一명 중등과(中等科) 二十九명이고 아생(啞生)이 국민과(國民科) 二백 四十명 중등과(中等科) 三十명으로 三백명이 된다고 합니다. …(중략)… “졸업한 뒤의 직업상황(職業常況) 또는 결혼생활(結婚生活)은 어떻습니까?” “직업과(職業科)로 맹생(盳生)에게 침안과(鍼按科) 아생(啞生)에게 양복재단(洋服裁斷) 공예과(工藝科)를 교수하고 있는데 졸업 후 침술(鍼術)과 안마(按摩)의 허가를 얻어가지고 수입이 상당한 맹생도 있고 재단공예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생(啞生)도 많습니다. 결혼은 아생(啞生)은 아생끼리 하는 예가 많은데 아주 원만하게 지내고 있고 자녀도 많이 길읍니다. 맹생은 대개가 보통사람과 결혼하고 있읍니다. ” …(중략)… 운동장에는 아생중등부(啞生中等部)의 건장하게 생긴 청년들이 묵묵히 체조를 하고 있읍니다. 또 저쪽 철봉들이 있는 편에는 아마 아생중등부 여학생인 것 같은 제복입은 一대가 율동유희(律動遊戲)를 하고 있습니다(Kyunghyang Shinmun Newspaper, 1948).
시대별 장애인체육 활동의 변천과정
1960년대 장애인체육의 활동과 변화
유달리 발달한 청각과 촉각은 서울맹학교의 휴식시간에 더욱 약여하다. 철봉이나 수평을 하는 것은 보통이고 탁구까지 친다. 공과 배터는 일반이 쓰는 것과 같지만 탁구대의 가운데가 경계선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공을 굴려서 이고개를 넘기도록 되어있다. 공이 굴러오면 그 소리로 방향을 알고 배터를 들이대에 공을 밀어넘기는 품이 눈 뜬 사람보다 정확하다. 이밖에 축구볼만한 공을 굴려서 치는 야구, 땅으로 깔아서만 차는 축구등 모든 감각을 시각대신 활용하는 이들의 의지는 대단하다(Kyunghyang Shinmun Newspaper, 1969).
벙어리란 숙명적인 「핸디캡」 때문에 모든 인간 대열에의 참여를 스스로 체념해 버렸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국립농아학교 학생들은 감연히 힘과 힘을 겨루는 운동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벙어리가 운동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얼핏 납득이 가지 않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이들은 실력으로 극복하고 누구보다도 못지 않는 「스포츠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21일 상오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제4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지구예선전에서 처녀출전한 국립농아학교배구 「팀」은 말없는 1시간여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배구의 명문 京東중학 「팀」을 2대0 「스트레이트」의 압도적인 「스코아」로 물리쳐 관중을 놀라게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수들은 작전 「싸인」을 손짓발짓으로 전달하며 놀라운 「팀웍」과 운동신경을과시하여 「게임」을 시종 「리드」한 것이다(Dongailbo Newspaper, 1962).
1970년대 장애인체육의 활동과 변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학생들이 공을 차고 탁구를 하고 야구경기도 한다. 스트라이크 볼 투앤투 의자에 앉은 캐쳐가 타자의 스윙과 볼의 굴러가는 방향을 눈으로 보듯, 정확히 말한다. 十六일 오후 서울 종로區 신교洞 국립서울맹학교(교장 沈暻燮 · 五一)의 고二학년 一반 학생 十七명은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야구시합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손벽을 쳐 사인을 보내는 캐쳐가 피처에게 “다음은 五번 타자 金용진이다. 직구를 넣어”하고 말하자 二루에 나가있던 裵학진군(二一)이 “큰 것 하나 때려”라고 응원 공수간에 열을 올렸다. …(중략)… 경기규칙은 일반인과 똑같으나 볼이 야구공 대신 축구공이며 피쳐가 볼을 굴려 의자에 발을 벌리고 앉아있는 캐처의 발사이로 들어보내면 스트라익이고 밖으로 굴러나가면 볼이다. 또한 배이스에서는 손벽을 쳐 러너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타자가 친공을 잡는 수비측에게도 알려준다. 맹인들이기 때문에 역시 시간이 많이 결려 회수는 대개 五회 정도, 한번 출루하면 홈인을 하기 쉬워 점수는 七, 八점 가량 난다는 것. 이들이 하는 축구는 골포스트 없이 가로 三十五m 세로 四十m의 작은 운동장에서 五~十명이 한팀이 되어 상대편 골라인을 넘으면 골인되는 약식이다. 볼은 플라스틱 튜브안에 모래와 자갈 쇠붙이를 넣어 굴러가면 소리를 내게 만들어진다. 탁구의 경우만은 공과 배트가 일반인 것과 똑같고 경기규칙도 같은데 탁구대만 다르다. 네트 대신 네트 치는 곳을 중심으로 十五도 각도로 경사지게 하고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탁구대 가장자리 판자에 맞기전에 상대편 쪽으로 굴려넘겨야 하며 탁구대 밖으로 나가거나 판자에 맞으면 아웃으로 간주, 점수를 잃는다(Dongailbo Newspaper,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