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군 체력단련 역사의 재조명 : 미 육군 체력단련 사례를 중심으로

ABSTRACT

Purpose

This study confirm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First World War US Combat Strength Training Fitness System for contributing in the ROK military sports development.

Methods

This research method is literature analysis to be focused by the previous US Army Field Manuals.

Results

Concretely, The meaning of US Army fitness training was divided into four stages. First, this study confirmed the actual condition of the US Army fitness before First World War. Since 1916, US Army has developed a group physical training program applied the items suitable for the war and has systematically reflected the program in the recruitment training. Second, this study confirmed the process of operating military fitness program during the First World War. US Army physical fitness program provided an effective method to suit soldier fitness for war. Third, this study observed the fitness training changes of US Army after the First World War. At that time, US Army focused on maintaining health and basic physical strength for civilians and reserve forces, but US Army ran parallel with basal physical fitness and combat physical fitness after the Korean War. Fourth, this study compared military strength training between First World War and current US Army. Since First World War, the training of US Army has been developed around doctrine and manuals to be maintained the consistency of the system. In conclusion, US Army physical training system of First World War meant to be provided the basis of current military physical education and physical training. In other words, current fitness training is not dogmatic but has evolved, and it accommodated the basics of soldier physical training course from the past.

국문초록

목적

본 연구는 한국군 체육발전에 공헌하고자 1차 세계대전 미군 전투 체력단련 체계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였다.

방법

연구방법은 역대 미 육군 체육교범을 중심으로 한 문헌분석이다.

결론

구체적으로 미군 체력단련 의미는 4단계로 나누어 정리되었다. 첫째, 1차 세계대전 참가 이전의 미군 체력단련 실태를 확인하였다. 미군은 1916년 이후부터 전쟁에 적합한 종목을 반영하여 단체체력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이후 신병 훈련에 체계적으로 반영하였다. 둘째, 미군의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체력단련 프로그램 운영과정을 확인하였다. 미군 체력 프로그램은 전쟁에 적합한 군인의 체력을 신속하게 평가할 수 있는 효과적 측정평가 방법을 제시하였다. 셋째,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체련단련의 변화를 확인하였다. 이 당시 미군은 민간인과 예비군을 위한 건강과 기본체력 유지에 주력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기초체력과 전투체력을 병행한다. 넷째, 1차 세계대전과 현재 미군의 체력훈련을 비교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현재까지 미군의 체력단련은 교리 및 교범을 중심으로 발전되었지만 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하였다. 결론적으로 1차 세계대전의 미군 체력단련 체계는 현대 군 체육교리 및 체력훈련의 기틀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현재의 체력단련은 독단적이지 않고 진화한 것이며 과거로부터 이어온 군인 체력훈련 과정의 기본을 수용하였다.

서론

최근 학문은 독립적이고 단절되었던 경향에서 벗어나 인근 학문과 연계되면서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꾀하고 있다. 군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군사학은 ‘군의 본질과 성격을 연구하기위해 군사력과 긴밀히 연관된 제 요소들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 정의함으로 학문과의 연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Kim et al., 2014; Hwang et al., 2014).
특별히 군사학과 체육학과의 통섭은 19세기부터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근대 정치 사회학자였던 양계초(梁啓超, Liang Qi-Chao)는 ‘군사력은 병역의 의무에 종사하는 국민의 힘에 의해 창출되며 체력이 그 군사력의 기본이다’라고 보았다. 그는 당시 유럽 제국주의 국가가 초등교육에서부터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중 독일이 전쟁영웅을 잉태할 체력을 강조하여 강한 군사력을 보인 점을 지적하면서 군사와 체육의 밀접함을 언급하였다(Lee, 2006; Liang, 1902).
본격적 군 체육 발전은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군 체력단련 교범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대비한 강한 군인양성을 위해 미국과 유럽은 필연적으로 체력단련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가장 체계적으로 체력훈련을 정립한 대상은 단연 미군이었다. 그 이유는 미군이 선도적으로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투에 필요한 군인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체육교범에 정리하였기 때문이었다. 1946년에 간행한 미 육군 야전 체육교범(FM 21-20)의 서문에서는 전투를 위한 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군사 지도자들은 전투요원의 효율성은 그들의 체력조건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으로 항상 인식해 왔다. 전쟁은 체력, 스태미나, 민첩성 및 병사들 간의 협조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 이유는 전투에서의 승리와 병사들의 생명은 이들 요소들에 의해 너무 자주 좌우되기 때문이었다.험악한 지형을 완전무장, 화기 및 탄약을 휴대하고 장거리를 행군하여 전투지역에 도착과 동시에 효과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위하여, 험악한 지형을 극복하고 전차 및 차량의 신속한 기동을 위해, 목표지역으로의 돌격과 장거리를 뛰고 포복을 위하여, 개인호, 탄흔 및 참호(교통호)로부터 이동과 장애물 극복을 위하여, 무거운 장비의 수송 및 휴대를 위하여, 수면 또는 휴식 없이 수 시간동안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들 모든 전투행위 및 기타 많은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준비된 부대를 요구한다(War Department, 1946).

위 내용으로 본다면 미군은 완전무장 속에서 장거리를 행군하고 험한 지형을 극복하는 전쟁 수행력을 배양하기 위해 기본체력은 물론 민첩한 행동과 협동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미군은 군 맞춤형 체력을 위한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제작해 왔다.
미군의 교범은 초창기 1919년 콜러(Koehler)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교범(West Point Manual of Disciplinary Physical Training)에 이어 1920년 래이크로프트(Raycroft)의 집단 체력단련 교범(Mass Physical Training Manual) 그리고 1941년에 지금의 야전 체육교범인 FM 21-20 초기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수십 년에 걸친 체육교범 개정은 변화해 가는 부대임무 및 개인별 능력을 고려한 체력단련의 이론에 근거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미 육군 체육교범에서는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체력을 고려하였고 이를 최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맞춤형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또한 모든 군인의 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침으로 사용하도록 지역환경 차원에서도 개발되었던 것이다(War Department, 2002).
미군이 과학적이고도 다양한 지역환경을 고려한 체력단련법을 제시한 배경에는 세계 정찰군으로의 역할을 담당한 것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분쟁국가에 군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병현지 사정에 적합한 군인 체력 육성법을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군의 체력단련 실태는 어떠한가. 한국군은 각군 교육사령부 및 사관학교 그리고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체력단련 이론 및 체육교범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군 체육 교리체계 정립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전 체육교리는 체계적 업무체계 정립 미흡과 관심부족으로 각 군별로 체육 교리 및 체력단련 이론이 연구되고 간행물로 발간되었으나, 완벽히 전군에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1984년 국군체육부대가 창설된 이후 군 체육 교리발전 업무를 수행해 오면서 군 체육 연구를 시도하였으나, 체육 교리발전 업무수행을 위한 세부적 규정과 교리발전 단계에 의한 업무수행 절차, 그리고 상급 관련부대의 통제 미흡으로 군 체육은 군내부에서의 관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Korea Armed Force Atheistic Cops, 2002).
이에 본 연구는 미군 체력단련 체계의 기본적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군에 기초적 자료를 제공하고자 1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나타난 군 체력단련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현재 미군 체육과 관련된 국내 선행연구는 군 과업에 따른 전투체력 요소 확인(Kim et al.,2009; Nam, 2012)과 군 체력검정 실태를 일부 분석하였으나(Kim, 2012) 미국과 같이 군 체육교범 및 교리의 원리와 체력단련 프로그램에 대해 다각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실정이다(Degen, 1967; East, 2013; Finlayson, 2001; Keene, 2000; Lowman, 2010; Yebra, 1998; William et al.,1947; William, 2007).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 미군의 체력단련 훈련과정과 당시 유럽군의 실태를 확인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미군이 1차 세계대전 참전과 함께 차별화한 체력단련 프로그램 운영과정을 살펴보았다. 세 번째 단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체련단련 변화를 확인하였다. 네 번째 단계는 1차 세계대전과 현재 미군의 체력단련 훈련체계 비교를 통한 의미를 함축하여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분석을 시도하였다. 1차 자료는 West Point Manual of Disciplinary Physical Training (1919), Mass Physical Training Manual(1920), FM 21-20(1941, 1946, 1992), Army Physical Readiness Training(2001, 2010, 2012)등과 같은 미 육군 체육교범을 확인하였고 2차 자료는 관련 국내외 논문을 참조하였다. 연구의 제한성은 1차 세계대전 시 육군에 공군이 포함되고 육군이 가장 많은 병력을 관리한다는 전제로 미 육군 중심의 자료를 참조하였다.

1차 세계대전 전쟁 양상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러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은 ‘기술력 중심의 대량징집 시민군’, ‘전략목표로서 적 주력군 격멸지향’, ‘평시 다수의 예비군 보유’, ‘전시 신 편성부대 창설’, ‘상부 지휘통제식 부대편제’, ‘신속한 이동’, ‘전문성과 능력위주의 부대지휘’, ‘군사교리에 입각한 전투훈련’등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Hwangbo, 2008; Smith, 2008).
이러한 경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분야가 신속하고 대량화됨에 따라 강대국이 거대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군비 대량생산의 원동력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군대규모가 확대되고 중화학 공업산업의 발전으로 군비산업이 급성장된 배경에 있었다(Montgomery, 1968; Seung, 2004).1)
따라서 1차 세계대전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였고 무기체계의 발달로 전쟁 수준면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어 진행되었다(Shin, 2005; McNeill, 1984). 당시 군대는 종래보다 훨씬 정확한 시간계획에 따라 동원되었고 수십만의 현역 및 예비군이 편성되고 모든 부대에 무기를 지급하는 형태를 보였다. 따라서 전쟁의 승패는 장비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효율적 운용에 좌우되었다(Lee, 2006; Creveld, 1991).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시스템적 전쟁관리는 모든 군인이 동일한 교육과정의 테두리 안에서 훈련을 받는 이른바 공통적 군사교리 운영으로 보다 체계화되어 갔다. 이에 미국 및 유럽강대국은 평시에 24시간 연속감시와 경계태세 유지 및 군사적 대비태세를 하기 위해 군사교리를 통한 훈련체계를 유지하고 있다(Seong, 2011). 군 체력단련도 예외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교리 중 체육교리가 개발되어 각급 부대가 계획적 체력단련을 실시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과 군 체력단련 관계

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군 체력단련 체계

1912년에 제28대 대통령에 선출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체육에 대한 열정을 많이 가졌던 탓에 군 체력단련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에 미군은 1914년에 1892년의 콜러(Koehler)의 체력단련 교범을 기초로 미군 체력단련 훈련교범을 제작하였다. 미군은 교범 서문에서 ‘체력단련은 모든 군인들이 가능한 최적의 군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신체적 조건을 최적화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 중요한 과업을 위한 목적은 평시 일반건강과 균형적 신체관리의 힘, 근력 및 지구력 향상, 자기조절력, 민첩함 및 정밀함이었다(Koehler, 1914).
미군 체력단련의 체계는 1916년 멕시코와 국경분쟁 전쟁을 계기로 정립되게 되었다(Link, 1954). 멕시코전쟁 중에 미군은 장비 및 여건 부족으로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운동을 할 수 없었으며 자연 군대의 체력유지를 위해 별도의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되었다(Fosdick, 1958). 이에 미군은 피츠버그에 군 훈련소를 마련하여 신병에 대한 체력단련의 체계를 잡아갔다(Ellis & Garey, 1917). 당시 훈련소 체력단련의 핵심은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최적의 군인을 만드는 것으로 주로 전쟁과업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유연체조로부터 시작하여 행군, 점프와 같은 주로 근력과 민첩성을 향상시키는 체력향상 훈련에 초점을 맞추었다(Cole & Schoonmaker, 1917).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1913년부터 유럽분쟁에 대해 중립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윌슨의 정책노선은 미국이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져 독일계와 영국-프랑스계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기 곤란한 측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미국 비무장 상선을 공격하는 등 공격적 태도를 자주 나타내자 미국 정부는 결국 참전을 결심하게 된다(Oh, 1999). 1917년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당시의 미군 체력단련법은 자연스럽게 유럽 연합군에 적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미군 체력단련 체계

1917년에 미군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우수한 군인 선발을 위한 체력단련에 대한 보다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며 당시 유럽 연합군 체력훈련을 참조하여 발전시켰다. 당시 영국군은 자유시간 동안에 럭비와 같은 박진감 있는 운동으로 체력단련을 실시하였으나 전쟁에 대비한 실질적 체력을 갖기엔 한계를 느꼈던 것에 반하여 독일은 정예군인 양성을 위한 체력단련법을 시행하여 우위를 보였다. 이에 유럽 연합군은 군 과업에 필요한 체계적 체력단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미군의 체력단련 체계를 수용하게 되었다(Fosdick, 1958; Keene, 2000).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군인은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대규모 돌격전을 벌이는 전쟁형태에 능숙해야 했으며 미군 체력단련 체계는 이러한 전쟁 수행능력을 강화해주는 실제적 역할을 담당했다.
Fig. 1.

Boxing Instruction During Basic Training(WWI Training Camp,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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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World's Largest Boxing Class 27 June(WWI Training Camp,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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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군 체력단련은 프린스턴 대학에 래이크로프트(Raycroft)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건강, 움직임 그중에서 운동을 수행하기 위한 민첩성, 근력 중심의 단체운동을 통한 체력양성에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가장 군 과업에 효과적인 단체 체력단련 활동으로 복싱과 총검술 급속행군(달리기)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미군에 보급하였다(Degen, 1967).2)
미군은 래이크로프트(Raycroft)의 신체 반복적 운동경기 훈련스타일과 단체체조형식의 콜러(Kohler) 방식이 종합된 교범(Mass Training Manual)을 1920년에 간행한다. 이 교범의 핵심은 6가지로 신체적 반복연습, 그룹게임, 개인 간 경쟁, 개인별 맞춤식 체력테스트, 단체 경쟁운동, 총검술로 요약된다. 총검술 및 개인 경쟁 훈련의 경우에는 다이내믹한 경쟁성, 자신성, 전투정신, 강압적 통제에 대한 순응 등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논리가 강하게 적용되었던 종목은 복싱으로 총검술과 연계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Raycroft, 1920).
Fig. 3.

Trench Negotiation Drills(WWI Combat Readi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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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Wire Entanglement Negotiation Drills (WWI Combat Readi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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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Casualty Evacuation Drills(WWI Combat Readi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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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Bayonet Charge from Trench(WWI Combat Readi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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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Rush Drills with Rifle (WWI Combat Readiness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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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교범의 교육목적은 체력단련 지도 간부가 규칙적으로 다양한 운동에 참여하도록 병사를 독려하며 단순히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단련되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려는 취지는 전쟁 상황이건 아니건 간에 경쟁적 운동으로 즐거움을 얻는 것은 물론 군인의 잡념 및 일탈행동을 예방하는 조치의 일환이었다(East, 2013).3)
1차 세계 대전 전의 체력단련은 군인 개인적 측면에서 체조 중심의 체력강화에 중심을 두었다면(Koehler, 1892), 1차 세계대전 동안의 체력단련법을 적용한 이 교범은 전쟁 및 군 과업에 관련된 신체적응력에 초점을 둔 개인능력효과검정(Individual Efficiency Test)을 제시하였다. 이 검정평가 종목은 급속달리기(14초 안에 91.4m), 멀리뛰기(3.6m), 벽오르기(2.4m), 수류탄 던지기(직경 27.432m), 장애물 넘기로 구성되었다.4)이 검정은 군인이 기본 표준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며 기준 도달에 실패하면 30일 이내 재 검정하도록 하였으며 통제 장교들은 결손이 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체계적 평가제도였다(Raycroft, 1920; Reagor, 1993).
이전에 군 체력검정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검정제도의 시초는 1852년 미 육군사관학교(USMA)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06년 전군에 보급되었으나 종목 및 기준선정에서 과도기적 형태였으며 체계적 접근은 제1차 세계대전에 탄생한 개인능력효과검정(Individual Efficiency Test)으로 볼 수 있었다(Koehler, 1892; War Department, 1917; Yebra, 1998). 이처럼 미군이 기준 등급을 정하여 측정평가 체계를 제시한 배경에는 당시 전쟁에 투입된 대량인원의 군인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체력단련 체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은 전쟁분야 과학 분야로 전쟁 사상자를 줄이기 위한 의학 및 무기공학에서 보다 큰 발전을 보였다(East, 2013). 이러한 분위기 속에 미군은 1919년에서 1939년 사이를 중심으로 민간차원의 평시 소규모 군 유지 전략에 중심을 보여 유사시 전투 시에만 예비병력을 활용하여 군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으며 군 체육정책에서도 같은 맥락을 보였다(Finlayson, 2001). 즉, 미군은 체력단련 방향에 변화를 보여 기존 군인 중심에서 민간인 및 예비군 중심으로 연구가 변화하게 되었다(War Department, 1922).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군의 교범은 점차 전투임무 능력을 강조하는 체력단련에서 기본 건강과 체력유지를 로 바뀌어 갔으며 이 같은 경향은 1941년의 육군 야전 체육교범(FM 21-20)에서 확인되었다(East, 2013). 체력단련 스타일이 변화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이유는 전쟁보다는 평시 기본건강의 이상과 질병으로 사상하는 경향이 많다는 통계결과였고 두 번째 이유는 전쟁장비 발달로 인해 기존 단순한 전쟁 수행을 위한 체력단련 보다는 장비와 함께 능숙하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체력(민첩성, 스피드, 지속체력)을 원했기 때문이었다(East, 2013). 이러한 의미는 1946년에 제작된 야전 체육교범 내용 중에서 확인되었다.

부대의 질은 전 군인의 전반적인 체력상태 및 총체적인 전비태세에 의해 결정된다. 군인의 체력상태는 대다수 군인들이 체력검정 기준에 합격하는 것보다도 모든 군인들이 균형적이고 잘 지시된 체력단련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체력단련 프로그램은 모든 부대 구성 군인이 총체적인 전비태세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지속되어야 한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46).

위 내용에서 특징적 시사점은 군인이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기초체력요인에 대한 검정평가 기준을 마련한 것에 있었다. 이 검정은 이전에 평가한 전투수행력 평가와 달리 심폐지구력, 근력, 근지구력 등과 같은 기초체력 요인측정에 중점을 둔 것이다. 기초체력 검정제도는 1942년에서부터 1944년까지 미 지상군 체력검정(Army Ground Forces Test: AGFT) 및 신체 효율성 검정 평가(Physical Efficiency Test Battery: PETB)의 개발로 진화되었으며 1946년에 교범에 반영하게 되었다(William et al.,1947).5)

1950년 7월 5일에 미군은 전쟁에 대비한 신체적 요구조건을 구비하지 못한 채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 초기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짧은 재앙이었다. 당시 미군은 체력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행군하였지만 북한은 의외로 잘 조직화되고 훈련받은 상태였다. 당시 미군은 무거운 물건을 감당할 만한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상당한 동료와 다양한 전쟁 장비를 남겨두고 퇴각해야 했다. 이러한 값진 스미스부대의 교훈을 삼아 만일 우리가 군 과업에 필요한 신체적 조건을 준비시키지 못하였다면 “싸움과 같이 훈련하라”는 표어는 단지 립 서비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의 체력단련 프로그램은 단순히 군 체력검정의 기준을 통과하는 것보다 군인을 위한 그 이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야전 체육교범(FM 21-20)은 군 지휘관들에게 신체 체력요인 훈련과 그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92).

위 내용은 1차 세계대전의 전투력 중심 체력단련 체계에서 벗어나 1941년 이후 한국전쟁시기까지 미군의 평시 건강 중심의 체력만을 강조했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미군은 중량 부하에 따른 행군능력 저하로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전 사례를 교훈 삼아 절충형 체력단련 체계를 구축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야전 체육교범에 기초체력 함양을 위한 체력검정 제도 강화, 군 과업에 필요한 체력단련 방법을 소개하였다. 미군은 기초체력을 위해 연령과 성별에 따라 합격 기준을 차별화하여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오래달리기(3.2km) 3개 종목에 대한 체력평가를 매년 실시하였고 2010년에 새롭게 전투체력측정 종목을 선정 개발하여 기존 체력검정과 함께 평가를 병행 실시하고 있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2010; Jaenen,2009; Kim et al.,2009; Nam, 2012).6)이러한 배경은 시행중인 체력검정 종목이 실제 전투수행과 관련성이 낮으며 군에 필수적 체력요소를 측정하기 부적절하여 성공적인 신체적 수행력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었다(Kim, 2012).

1차 세계대전과 현대 군 체력단련 훈련체계 변천과정 비교

앞서 논한 미군 체력단련은 크게 3단계로 변화해 갔다. 첫째, 1차 세계대전에는 전쟁에 대비한 체력훈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대량인원의 군인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과 측정체계를 제시하였고, 둘째, 1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민간인과 예비군을 위한 건강과 기본체력 유지에 주력하였고, 셋째,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기초체력과 전투체력을 병행하는 절충형태로 변화하였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후 현재까지 미군의 체력단련은 진화·발전되었지만 이를 위한 훈련체계는 일관적인 맥락을 유지하였다. 미군 체력단련 훈련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1차 세계대전과 현재의 체육교범 훈련지침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의 체력단련 훈련은 신체 관리태도, 신체 및 정신적 조절, 개인 전투임무 능력, 전반적 신체 효율성, 최적의 훈련여건 조성, 복장, 장소여건 확인, 훈련 구령 요령, 프로그램 구성에 초점을 두었다. 당시 미군은 전·평시 모든 시기에 체력단련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어느 전장환경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현장사례를 확보하여 훈련체계를 정립해 갔다(East, 2013; Raycroft, 1920).
당시 체력훈련의 중점은 훈련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규칙적 단체운동이었다. 먼저, 비교적 높은 강도수준의 단체게임 및 단체행군으로 개인 전투정신과 팀워크 및 리더십이 배양되도록 하였고, 다음으로, 체력 훈련은 규칙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이를테면 미군은 ‘훈련은 오전에 개인 컨디션에 맞게 실시하고 오후에는 신체적 효율성을 고려한 단체운동을 실시’하라고 권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체력단련을 지도하는 교관은 ‘특별하게 교육을 지도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현대의 체육교범에서는 군 체력단련 훈련을 크게 7개 준칙으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첫째, 팀으로 구성된 체력훈련을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극한 전쟁 속에서 단체 중심의 체력단련이 높은 수준의 체력을 보일 수 있다는 1차 세계대전의 교훈 때문이었다. 이에 미군은 병과(Military Branch of Service)와 군사특기(Military Occupational Speciality)에 관계없이 군인을 팀으로 구성하여 체력을 단련시키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경향은 1차 세계대전의 경우 단체중심의 체력단련 방식의 기본 기조를 수용한 형태인 것이다(Degen, 1967).
둘째, 싸우는 방식대로 훈련시킬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군인이 전쟁 수행을 위해 기초체력과 전투체력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즉, 군인은 기초체력 평가검정에 대비한 표준 체력수준을 배양하고 전투체력 함양을 위한 체력단련 프로그램(장애물 극복, 등산, 수영, 달리기)을 숙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916년 이후 미군에 도입된 전쟁에 활용되는 종목 중심의 체력훈련 기조와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다(Ellis & Garey, 1917; Link, 1954; Fosdick, 1958).
셋째, 교리에 따른 훈련을 강조하였다. 교범은 이전의 다양한 전투교훈을 반영한 것으로써, 지속적 교리발전의 주기를 거쳐 왔다. 교리는 전쟁수행 개념을 압축시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훈련은 교리에 근거하여야 한다. 미군의 교리 중심의 체력단련은 부대임무 및 개인능력을 고려한 체력에 관련된 이론과 원리에 근거한 것이므로 효과적 전투능력과 군 임무 수행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보았다(East, 2013).
넷째, 부대계획에 따른 임무위주 체력단련을 강조하였다. 즉, 군에서의 체력단련은 부대특성 및 지역환경에 따라 적합한 과제, 조건, 기준에 따른 기본훈련 계획(Master Training Program)에 준하여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은 이러한 훈련계획에 따라 ‘군인은 핵심체력(근력, 지구력, 기동력) 증진을 위한 단계별 과정을 통과해야 하며 기준에 부합될 때 까지 지속적인 체력단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을 교범에 명시하고 있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2001).
다섯째, 도전적 훈련을 실시할 것을 강조하였다. 군인의 신체적 능력을 증진시키는 목적은 극한의 상황에서 전투임무 수행이 가능토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체력단련 단계는 훈련 간 부상에 대비하면서 도전적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경쟁훈련의 경우에 다이내믹한 경쟁과 자신감을 강조한 래이크로프트(Raycroft)의 훈련체계와 연계성을 보였다(Raycroft, 1920).
여섯째, 규정에 근거한 숙달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군인의 체력단련은 체계적 틀 안에서 지속적 숙달훈련을 통해야만 효과를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군인의 전쟁수행 및 기타 군 과업능력은 신속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단체활동이므로 이에 대한 체력단련은 규정과 반복을 통한 훈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 체력단련은 평시 다양한 군 과업에 필요한 양호한 건강 및 체력상태를 마련해 줄 것으로도 보았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2001).
일곱째, 지휘관이 중심이 된 체력단련을 강조하였다. 지휘관은 인솔 장병의 부대훈련과 업무수행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며 모든 군 훈련을 관리한다. 따라서 군 체력단련도 지휘관의 프로그램으로 주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군은 ‘지휘관은 교리 및 부대훈련계획에 근거한 효율적인 체력단련의 실시로 부대원의 체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라고 교범에 명시하고 있다(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2001).
결론적으로 본다면 1차 세계대전의 미군 체력단련 체계는 현대 군 체육교리 및 체력단련의 기틀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현재의 군 체육체계는 독단적이기 보다 진화한 것으로 최근의 체육계 추세를 반영하였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온 군인 체력훈련의 경향을 수용하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 당시 훈련 핵심인 신체 관리태도, 정신력 조절, 개인 전투임무 능력, 전반적 신체 효율성 등과 같은 훈련준칙은 현대의 팀 중심 집단 훈련, 싸우는 방식대로 훈련, 도전적 훈련, 숙달 및 지속 등과 같은 훈련준칙에 기본을 제공한 것이다. 다만 현대 체력단련은 이전 보다 교리에 준한 계획된 훈련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론

현대 학문의 추세는 흩어져 있는 고립된 학문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이른바 통섭과 융합에 있다. 군사학도 군사력과 직결될 수 있는 군인의 체력을 연구하기 위해 체육학과 통섭을 하고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 군과 체육의 통섭에 가장 발전적 역할을 담당한 시기는 단연 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 배경은 미군을 주축으로 전쟁에 대비한 과학적 체력단련을 적용했던 시기로 평가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현대군 체육교리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미군 체력단련 체계를 확인하였다.
미군 체력단련 의미는 크게 4단계로 나누어 기술하였으며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전 미군의 체력단련 훈련을 확인하였다. 미군은 1916년 멕시코 전쟁이후부터 전쟁에 적합한 종목을 반영하여 단체체력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이후 신병 훈련에 체계적으로 반영하였다.
둘째, 미군의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체력단련 프로그램 운영과정을 확인하였다. 당시 미군의 체력 프로그램은 전쟁에서 대량인원의 군인이 신속하게 평가될 수 있도록 효과적 측정평가 방법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장점으로 미군 체력프로그램은 유럽의 연합군에 급속히 적용되었다.
셋째,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체련단련 변화를 확인하였다. 군 전력 유지 변화에 따라 미군은 민간인과 예비군을 위한 건강과 기본체력 유지에 주력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기초체력과 전투체력을 병행하는 절충형태로 변모하였다.
넷째, 1차 세계대전과 현재 미군의 체력단련 훈련 비교를 통한 의미를 제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미군의 체력훈련 준수사항은 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교리 및 교범을 중심으로 진화 발전되었다.
결론적으로 1차 세계대전의 미군 체력단련 체계는 현대 군 체육교리 및 체력훈련의 기틀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현재의 체력단련은 독단적이기 보다 진화한 것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온 군인 체력훈련의 기조를 수용하였다.
1차 세계대전의 군 체력단련의 재조명을 통해 향후 한국군 체육 발전을 찾기위해서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체계적 체육교리 업무 통제를 위한 규정을 제시하고 체육 교리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업무계획과 관련기관들이 연합하여 보다 진일보된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Note

1) 187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유럽의 인구는 10년에 10퍼센트씩 증가하였고 1870년에서 1898년에 독일의 상비 병력은 3배로 증가해 300만 명 이상에 달했고, 러시아는 400만 명, 오스트리아는 200만 명 이상이었다. 유럽열강들이 야전에 투입할 수 있는 병사는 25년 동안 모두 합쳐서 1,000만 명 정도가 증가했다. 또한 각국의 군비경쟁은 육군과 해군 기술 발달을 가능케 했다.

2) 이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교육하는 교관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약 20만 명 이상의 군인을 지도하였다.

3) Raycroft의 교범은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을 기술되었고 또한 운동 과학적으로 기술적 정보를 제공해주어 비교적 잘 디자인 되었다. 특히나 학생 및 강사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 특징이었다. 내용의 50% 부분은 운동트레이닝을 위한 운동경기와 시합으로 구성되었다.

4) 장애물 넘기운동은 집단체력 훈련교범(Mass Physical Training manual)에 근본적인 체력 수준을 판별할 수 있도록 장애물 사용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검정의 경우는 5개 종류의 장애물을 교장(91.4m)에 설치하였다. 군인들은 9m마다 전력 질주하여 손으로 세 개의 허들을 뛰어넘고 13.7m를 전력으로 철조망을 기고 13.7m정도의 높은 1.5m 정도의 경사로형 장애물에 오르고 30cm 넓이의 3m 도랑을 뛰어오르고 13.7m를 전력 질주하여 20피트의 긴 다리를 건너고 13.7m를 전력 질주하여 2.4m의 울타리를 넘어 올라야 했다. 이러한 코스의 합격선은 30초 이내에 끝내야 했다.

5) 미군 체력검정 체력요인별 검정 종목 변천과정은 향후에 세부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6) 선행연구에서는 군 행동요소와 함께 체력요소를 분류했다. 군 행동유형은 여러 행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군수물자 운반과 관련된 들어올리기(41%)와 나르기(30%) 행동요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포복(1%) 및 행군(2%) 등은 비교적 낮은 비율로 나타났다. 이는 군사훈련과 관련된 행동요소보다 부대 운용 및 유지를 위한 이동 군 과업이 보다 많은 비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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