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Sport Sci > Volume 30(3); 2019 > Article
스포츠 불문율 담론에 대한 고찰

ABSTRACT

Purpose

The goal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unwritten law of sports - a moral law - in relation to the purposeful act of continuing to score, when winning has been already secured, in normative terms of sportsmanship.

Methods

To do this, this article analyzed previous debates on the unwritten law about overwhelming victory and looked at the pros and cons of this law. Then, I contemplated the reasons for these opposite views, as well as the values and theories underpinning these view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nature and morality of sports.

Results

My argument is that respect for sport should mean more than observing sporting rules and include respect for the tradition and practice of each sport: hence the necessity of the unwritten law regarding overwhelming victory. I also suggested that the mercy rule be applied in a heavily lopsided game in order to maintain sportsmanship in a rational way.

Conclusion

My discussion on the unwritten law about overwhelming victory from the viewpoint of sportsmanship may reveal the significance of the essence of sports, attitude towards competition as mutual request for excellence, and the importance of winning.

국문초록

목적

이 논문의 목적은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점수차를 계속 벌리는 행위를 중심으로 스포츠 속 도덕률이라 할 수 있는 불문율에 관하여 스포츠맨십이라는 특수한 규범적 측면에서 비평하는 데 있다.

방법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압승의 불문율 논쟁에 관한 저명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분석함으로써 이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을 살펴보고, 왜 상반되는 입장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의 바탕이 되는 가치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포츠의 본질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결과

본고는 스포츠에 대한 존중은 단순히 그 종목의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아닌, 그 종목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압승에 관한 불문율의 당위성을 구명하였다. 또한 이미 승리가 확보되었을 정도로 편중된 시합의 경우 스포츠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자비규칙의 적용을 제안하였다.

결론

스포츠맨십의 관점으로 본 압승의 불문율에 관한 논의는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개념, 탁월함의 상호추구로서 경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승리의 중요성에 관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 론

미국의 한 여자고교농구시합에서 Covenant School이 Dallas Academy를 100대 0으로 이겼다. 이 경기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특히 컸던 이유는, Covenant School은 기독교계 학교이고, Dallas Academy는 학습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농구팀이란 사실이었다. 미전역 대중매체가 이 이야기를 다루었고, 열흘도 되지 않아 Covenant School의 교장이 “경쟁에 대해 그리스도다운 명예로운 접근에 실패한 수치스러운 사건”이라며 공식사과문을 발표하였다(Sailors, 2010). 또한 교장은 그 경기의 결과를 취소해달라고 고교농구시합을 관장하는 기관에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당시 Covenant School의 농구팀 감독은, 100점을 득점하고 경기 종료 1분이 남은 상황에서도 팀원들에게 속공과 강한 압박수비를 멈추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인터뷰 하러온 많은 기자들 앞에서 그는 당당해하며 다음과 같이 공식적으로 답변하였다. “우리 선수들은 명예롭고 당당하게 경기했다. 만약 이 경기 때문에 내가 감독직을 잃는다면 나는 내 소신을 유지하며 물러나겠다”(Sailors, 2010). 인터뷰 직후 감독은 결국 해고당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감독의 해고는 정당한 것일까? 스포츠경기에서 약한 팀을 상대로 이렇게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승리하는 것은 과연 스포츠정신을 위반하는 것일까?
2019년 3월, 국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감독은 13-7로 KIA 타이거즈를 크게 앞서 있던 9회말 2아웃, 아웃카운트 단 하나를 남겨 둔 상황에서 KBO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 중에 한 명인 선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이에 맞서 KIA의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갑자기 빼고, 타자가 아닌 신인 투수를 대타로 내세웠다. 장갑과 팔꿈치보호대까지 착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헐레벌떡 타석에 들어선 투수는 그대로 서서 스탠딩 삼진을 당했다. KIA는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자 패배를 인정하고 주축 선수를 교체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내보낸 것은 상대팀을 존중하지 않는 모욕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고 투수 대타 기용을 통해 항의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KIA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여론과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과연 KIA 감독의 지시는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가?
위의 두 사건은 농구와 야구 경기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의 농구 시합에서 일어난 100대 0의 경기는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끝까지 점수차를 벌려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였지만, 그러한 플레이가 상대팀을 존중하지 않고 모욕감을 주었다는 이유로 감독이 비난을 받은 사건이다. 국내 야구 경기에서 일어난 사건은 승패가 이미 기울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기용하여 마지막까지 경기에 임했고, 이러한 전략을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모욕감을 주는 행위로 받아들인 KIA 감독은 팀을 대표해 투수 대타 기용으로 항의를 표현했지만, 앞서 언급한 미국의 농구 시합과 달리 압승을 한 팀의 감독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항의한 감독이 비난을 받은 사건이다. 과연 어떤 것이 스포츠맨십일까? 승부가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경기 끝까지 모든 전술을 동원하여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략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하는 것일까? 스포츠에서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행동일까?
스포츠에는 흔히 불문율이라 불리는 관습이 있다. 스포츠 속 도덕률이라 할 수 있는 불문율은 말 그대로 문서에 적혀 있지 않은 규칙이다. 공식적인 규정에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공공의 동의를 얻어서 지켜지는 약속에 가깝다. 주로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상황에서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들이 불문율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축구에서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가 의도적으로 묘기 같은 드리블로 지고 있는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농락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문율이 단지 농구, 축구, 야구 같은 팀스포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탁구에선 10대 0으로 이기고 있을 경우 고의적인 ‘서브 미스’를 통해 11대 0 승리를 회피하는 것이 기본 예의라 생각하여 관례처럼 되어있다. 실제 탁구 스코어에서 11대 1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 올림픽(Youth Olympic Games) 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은 일본의 하리모토를 맞아 10대 0에서 ‘서브 미스’를 해, 11대 0 승리를 회피했다(Han, 2018.03.27). 이런 장면이 나올 때 대부분의 관중은 박수를 보낸다(Han, 2018.03.27).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스포츠에서 이런 행동이 정말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스포츠 불문율의 본질은 상대에 대한 존중일까? 상대팀이 이러한 불문율을 어겼을 경우 흔히 행해지는 보복행위는 정당한 것일까? 불문율을 지지하는 입장은 불문율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 강조한다(Feezell, 1986; Keating, 2018; Simon, 1991). Keating(2018)은 스포츠는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경쟁에 참여해주는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없으면 품위를 잃기 쉽다고 주장한다. 즉, 자칫 거칠어지기 쉬운 승부의 세계에서 불문율을 통해 결과에 상관없이 팀의 결속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플레이를 사전에 자제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Feezell, 1986, 1999; Gaffney, 2018; Keating, 2018). 하지만 스포츠 속 불문율에 대해서는 찬성만큼이나 반대 의견도 많다. 반대 입장은 팬들이 원하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경기이지 선수들 간 친목 도모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점수 차가 클 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분발’이라고도 말한다(Dixon, 1999, 2000; Russell, 2018).
Hardman, Fox, McLaughlin과 Zimmerman(1996) 같은 학자들은 팀이나 선수들이 이미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편중된 시합에서 승리의 격차를 최대한 벌이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는 선수들에게 가해질 감정적, 심리적 해로움에 기초해 이러한 압승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펼친다. Feezell(1999)은 약한 상대와 경쟁하여 압도적으로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용인될 수 있기도 하지만 대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스포츠맨십 측면에서 정정당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Feezell(1999)은 이미 승패가 기울어진 시합에서 “대강하기” 전략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팀이 득점을 자제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Sailors(2010)는 이러한 전략을 “자비규칙(mercy rules)”이라고 부르며 이미 한 쪽의 압도적인 승리를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시합에서는 자비규칙들이 유지되어야만 하며 또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Dixon(1992, 1998, 1999, 2000), Leaman(2018), Russell(2018)과 같은 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여 대승을 거두는 것이 본질적으로 그릇된 것은 아니며,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Dixon(1998)Hardman, Fox, McLaughlin과 Zimmerman(1996)이 주장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선수나 팀이 겪는 자존감 상실과 강한 수치심 사이의 관련성을 반박하며, 압승으로 야기된 자존감 상실이 압승을 비윤리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의 논문,『The Inevitability of Disappointment: Reply to Feezell』(2000)을 통해 Feezell(1999)이 제안한 이미 승리를 확보한 상태에서는 전략적으로 대강 하자는 주장은 패자들의 고통을 완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패자가 겪는 수치심을 오히려 더 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점수차를 계속 벌리는 행위”를 중심으로 스포츠 속 도덕률이라 할 수 있는 불문율에 관하여 스포츠맨십이라는 특수한 규범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명한 학자들의 기존 압승의 불문율에 관한 논쟁을 분석함으로써 이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을 살펴보고, 왜 상반되는 입장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의 바탕이 되는 가치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포츠의 본질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스포츠에 대한 존중은 단순히 그 종목의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아닌, 그 종목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압승에 관한 불문율의 당위성을 구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미 승리가 확보되었을 정도로 편중된 시합의 경우 스포츠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자비규칙의 적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스포츠맨십의 관점으로 본 압승의 불문율에 관한 논의는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개념, 탁월함의 상호추구로서 경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승리의 중요성에 관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압승의 불문율에 관한 윤리적 검토

전통적으로 스포츠에서 상대를 최대한 철저하게 무찌르기 위해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점수차를 계속 벌리는 것”은 스포츠정신에 어긋난 행위로 생각되어져 왔다(Feezell, 1999, 2004; Keating, 2018; Morgan, 2006; Simon, 1991). 물론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 텍사스 Christian University 농구팀의 감독인 Billy Tubbs는 상대를 최대한 무참히 깨버리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일례로 138-75로 Delaware State University에 압승한 경기에서, Tubbs는 승부는 이미 기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마지막까지 주전 선수들을 기용하며 압박공격을 폈다. Tubbs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독으로서 나의 임무는 우리 팀은 최대한 우월하게, 상대팀은 최대한 치욕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승리다”(Feezell, 1999).
저명한 철학자인 Nicholas Dixon은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계속 점수차를 벌리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Tubbs 입장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Dixon(1992, 1998, 1999, 2000)은 경쟁적인 시합에서 편중된 승리를 위해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은 전혀 “본질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엄청난 점수차로 대패를 당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편중된 승리를 위해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윤리적으로 나쁜 의도를 항상 갖는다면, 예를 들어 상대방을 치욕스럽게 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졌다면, 이런 행동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이러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 행동의 나쁨은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계속 점수차를 벌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Dixon, 1998, 2000). 더군다나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그 행동이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게 된다(Dixon, 1998, 2000).
이러한 Dixon의 주장을 반박한 Feezell(1999)은 때로는 점수차를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토너먼트 경기에서 결승전으로 진출하기 위한 방법이 총 획득한 점수의 차이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큰 점수차의 편중된 승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Feezell(1986, 1999, 2004)은 이러한 상황은 상대적으로 드물며,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면서도 계속 점수차를 벌리는 것은 대개 정정당당하지 못하며, 스포츠계에서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전통과 스포츠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Feezell(1999)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압승에 의해서 대패를 당하는 상대편의 심리적 반응을 강조하였다. 상대편을 최대한 처참하게 무찌르려는 것은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욕구의 표현이고, 실제로 압도적인 점수차로 패배를 당하는 선수나 팀은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Feezell, 1999). 진다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고, 크게 지는 것은 크게 실패하는 것이다. 스포츠에는 탁월함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도달하거나 넘어서려는 욕망이 스포츠경기에 참여하는 경쟁적인 선수들의 핵심이다. 진다는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잘 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므로, 크게 진다는 것은 자신의 잘하려는 욕망과 실제능력 사이의 큰 차이를 알게 되는 고통을 수반한다(Feezell, 1999). 의도적 압승은 상대의 실패, 즉 일시적인 형편없음을 거듭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건 다른 이의 감정에 대한 존중 부족을 드러낸다(Feezell, 2013; Gaffney, 2018). 상대방을 최대한 처참하게 깨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데 실패하는 것이기에 스포츠정신에 위배된다(Fraleigh, 1982; Feezell, 1986, 1999; Keating, 2018). 이것은 일상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상실과 실패에 대해 부정적인 심리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Gaffney(2017), Kretchmar(2017), McNamee(2010), Simon(1991)과 같은 저명한 스포츠철학자들 또한 Feezell의 입장을 지지한다. 이들이 Feezell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주요 근거는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경쟁”이라는 것이다. 스포츠시합이 경쟁이라고 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약한 의미에서, 말 그대로 나에게 맞서서 시합하는 이가 있을 때 그 시합은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의미로는, 양쪽의 기술과 재능이 비슷하여 막상막하의 대결을 할 수 있을 때 그 시합을 경쟁이라고 한다(Gaffney, 2017; Kretchmar, 2017; Simon, 1991). 후자의 경쟁을 좋은 경기라고 하는데, 서로의 운동재능을 겨뤄 결과가 나오고, 극적인 긴장감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우며, 최선을 다하도록 도전받는 과정에서 탁월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Gaffney, 2017). 이러한 의미에서 이긴 팀 코치는 진 팀이 “경쟁적”이었던 것에 감사할 수 있으며, 좋은 경쟁자가 되어준 진 팀에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건넬 수 있다. 이러한 코치의 상대에 대한 감사 역시 경쟁의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하게 해준다. 약한 의미의 경쟁은 그냥 경기를 묘사할 뿐이다. 즉, 양쪽 상대가 있고 규칙이 있고 승리의 가능성이 있을 때 경기는 성사된다. 강한 의미의 경쟁은 평가의 요소를 포함한다. 강한 의미에서 어떤 시합이 경쟁적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적” 혹은 “좋은” 경쟁이 이뤄져 칭찬과 감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Gaffney, 2017; Kretchmar, 2017).
한 쪽의 승리를 이미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편중된 시합은 주로 한 쪽이 상대보다 훨씬 더 강해 승자가 가치 있는 “경쟁적인”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이다. 또는 가치 있는 상대이긴 하나 유난히 형편없이 경기하는 경우 혹은 한 팀이나 선수가 유달리 뛰어나게 경기하는 경우이다. 물론 한 쪽이 유달리 그날 운이 좋거나 운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 쪽이 압승하는 경기에서 승리는 이미 결정되었고 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기는 더 이상 강한 의미에서 경쟁적이지 않다. 사실 이 경우 경쟁이란 이미 무너진 것이다. 이렇게 편중된 경기에서 승리를 확보한 후에도 승리의 격차를 최대화하려 한다면, 그건 “진정한” 경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Feezell, 1999, 2004). 진정한 경쟁, 좋은 경쟁이란 가치 있는 상대로부터의 도전이나 시험을 필수로 한다. 압승의 경우에는 이런 요소가 일시적으로나마 결여돼있다(Feezell, 1999, 2004; Gaffney, 2017, 2018; Kretchmar, 2017; McNamee, 2010; Simon, 1991).
좋은 경쟁이란 탁월함, 선수와 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낸다. 이러한 퍼포먼스야말로 막상막하의 격렬한 경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진기하고도 멋진 순간들, 스포츠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이다. 좋은 경쟁을 존중함으로써 선수들과 팀은 그들이 참여하는 스포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Gaffney, 2017). 스포츠정신의 이러한 면을 Feezell(2013)은 “경기존중”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아주 잘하는 팀과 아주 못하는 팀 간의 야구시합을 생각해보자. 6회에 이미 점수가 25 대 0 이라고 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있는 팀의 감독은 가차 없이 점수를 더 쌓아가고 있다. 기습 번트, 이중 도루, 스퀴즈 번트 등을 통해 계속 출루시키며 득점하고 있다. Feezell(1999)은 야구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이 경우 이기는 팀의 감독이 “경기를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건 “진정한” 야구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포츠에 대한 존중은 단순히 그 종목의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아닌, 그 종목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다(Morgan, 2006, 2017; Simon, 2018). 스포츠 속에 존재하는 어떤 규범이나 행동양식 역시 전통의 일부이다. 스포츠의 관습과 전통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구성원의 상호작용으로 만든 것이다. 즉, 선수, 지도자, 팬, 구단 관계자 사이에서 형성된 합의와 이해의 산물이다. 이러한 관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스포츠정신의 중요한 부분이다(Simon, 2018). 그리고 이러한 관습에 비추어 어떻게 행동할지 아는 것이 항상 쉬운 건 아니며, 경험과 올바른 판단력을 요한다(Morgan, 2017). 또한 이러한 스포츠 속 전통과 관습들은 구성원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변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최근 야구는 언제 어떻게 승패가 바뀔지 모르니 최대한 득점을 많이 내야 한다며 도루, 투수 교체 등 마지막 순간까지 총력을 다하는 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압승에 관한 윤리는 스포츠의 역사 속에 쌓여온 관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역전 홈런을 맞고 괴로워하는 투수 앞에서 춤을 추는 세러머니를 한다든지,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축구팀이 상대 수비수를 조롱하듯 묘기를 부리며 골을 넣고 상대 관중석 앞에서 세러머니를 펼친다든지, 승리를 확보했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로 이기고 있는 팀이 갖은 전략을 사용하여 점수차를 더 벌리려는 행위는 여전히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스포츠 전통 혹은 관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선수들과 코치들은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는 상황에서는 “대강” 경기해야 된다는 것인가? 이것은 항상 최선을 다해 경기함으로써 상대와 경쟁을 존중해야한다는 의무에 반하는 것 아닌가? Feezell(1999)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대강하기”에 대한 구별을 제시한다.

어떤 의미에서, 대강 한다는 것은 덜 열심히 하는 것이고 덜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 대강 하는 것은 노력이라기보다 전략과 관계가 있다. 후자의 의미에서, 대강 한다는 것은 점수를 내기 위한 전략을 피하는 것이다(Feezell, 1999, p. 73).

예를 들어, 농구에서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경우, 노력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대강 하는 것은 적절하다. 한 쪽으로 승리가 치우친 경기라 할지라도 모든 선수들은 열심히 경기해야한다. 그러나 점수내기를 멈추기 위해 코치가 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열심히 하겠지만 점수 내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할 후보 선수를 투입하는 것이다.
Dixon(1992, 1998, 1999, 2000), Leaman(2018), Russell(2018)과 같은 학자들은 스포츠에 단순히 승리 말고도 다른 중요한 면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승리를 확보한 후에도 점수차를 최대화하려는 노력은 피해야한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즉, 압도적인 승리를 통해 선수들 역시 그들의 탁월함을 보였다는 점에서(Dixon, 1998, 1999), 그들이 세운 개인기록 혹은 팀 기록에 대해(Leaman, 2018), 그리고 팬들에게 선사한 기쁨에 대해 자랑스러워해도 된다(Russell, 2018)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의 의미 있는 탁월함은 팀이나 선수에 도전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상대를 필수로 한다(Gaffney, 2018). 한 축구팀 감독이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절대적으로 약한 랭킹 최하위의 신생팀에 맞서 엄청난 점수차로 승부가 기울어졌음에도 모든 스타선수를 경기 내내 기용하여 끝까지 상대를 압박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기에서 스타선수 P는 무려 7골을 넣었고, 어시스트(도움)도 3개나 기록했다. 그러나 토너먼트의 남은 경기 동안, P는 단 한 골도,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하며 불필요한 반칙과 실책만 기록했다. 결승전에서 P는 백패스 실책을 범하며 황당한 자책골로 그의 팀은 허망하게 지고 만다. P선수는 유일하게 최약체 팀을 상대해 기록했던 득점 7골로 토너먼트를 마치며 최다 득점 선수에게 주는 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다. 과연 P가 수상한 MVP는 선수의 탁월함을 인정하는 의미 있는 상인가?
허약한 상대를 깨부수거나 잘 하지만 그날따라 못하는 상대를 무참히 이기는 것은 탁월함의 적절한 척도가 되지못하고, 허약한 상대를 통해 이룬 기록들 역시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못된다(Gaffney, 2017; Hardman, Fox, McLaughlin, & Zimmerman, 1996). 실제 오늘날 야구 경기에서는 승리확률기여도(Win Probability Added, WPA)를 통해 선수의 탁월함, 흔히 ‘영양가’를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한다. 즉, 15대 0으로 이길 때의 홈런과 1대 1로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의 홈런은 승리에 기여하는 정도가 다르며,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 선수의 탁월함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야구에서 약한 팀을 상대로 20점차로 이기는 것은 10점차로 이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경우는 승리팀의 탁월함보다는 상대팀의 허약함을 더 많이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팬들에게 선사하는 기쁨” 역시 상관이 없다. 팬들의 반응은, 상대와 경쟁하고 탁월함과 승리를 추구하며 재미를 맛보는 스포츠의 “본질적” 요소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정신을 판단하는 핵심열쇠는 스포츠의 본질적 요소이지, 외부의 것이 아니다(Fraleigh, 2018). 다르게 표현하면, 스포츠는 경쟁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이는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와 본질적으로 무관하며, 스포츠의 경쟁적인 놀이는 참가자에게 그 가치가 있지 관객에게 가치가 있지 않다. 따라서 “팬들에게 선사하는 기쁨”은 스포츠맨십과 관련된 적절한 행동을 판단하는 본질적 요소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압승에 관한 논쟁에 있어 중요한 사항은 스포츠정신과 관련된 도덕적 부분이다. 만약 선수들이나 팀이 편중된 경기에서 승리를 확보한 후에도 의도적으로 점수차를 최대화한다면, 그런 패배를 맛본 상대편은 수치심을 느끼고 인간으로서도 폄하된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Fraleigh, 1982, 2018; Feezell, 1999, 2004, 2013; Gaffney, 2018; Keating, 2018). 이 수치심과 관련된 주장은 분명 도덕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문제의 행위가 패배한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잔인함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Dixon(2000), Morgan(2017), Russell(2018)은 스포츠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지는 것이 수치심을 주지 않는다며 반박한다. 특히, Morgan(2017)은 승리나 패배 모두 인간의 가치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선수로서도 모욕당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런 주장은 “스포츠경기 결과를 너무 중요하게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다(Morgan, 2017). Dixon(2000)Russell(2018) 역시 상대편이 혹시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도덕적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은 스포츠경기의 결과에 대한 “착각”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처참하게 지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큰 수치심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개적으로 상실감과 큰 실패를 맛보는 것이기에 부정적인 반응은 실제로 일으킨다. 창피함이나 심리적 고통은 “착각”이나 피상적이지 않으며, 우리의 도덕적 고찰에 중요하다. 무엇보다 승리를 확보한 후에도 의도적으로 점수차를 최대한 벌리려는 선수나 팀은 상대에 대한 존중에 실패하는 것이며(Fraleigh, 1982; Keating, 2018), 이는 경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Feezell, 1999, 2013), 특히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근간으로 하는 스포츠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하는 것이다(Kretchmar, 2017; McNamee, 2010; Simon, 2018).
Dixon(1992, 1998, 1999, 2000), Leaman(2018), Russell(2018)의 주장처럼 스포츠에서 이미 승리를 확보한 후에도 의도적으로 점수차를 최대화하려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그릇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스포츠계에 만연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적 결과들에 기초해 의도적인 압승을 막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압승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자비규칙(mercy rules)의 적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스포츠맨십과 자비규칙

자비규칙은 이미 승리가 확보되었을 정도로 편중된 시합을 빨리 마치려는 취지이다. 이 규칙은 종목과 장소, 경쟁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의 경우, 주립고교연맹은 자비규칙을 미식축구, 야구, 농구, 소프트볼, 필드하키, 아이스하키, 축구 등에 적용하고 있다(Sailors, 2010). 우리가 흔히 콜드게임(called game)이라고도 부르는 것도 자비규칙의 일종인데,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5회 10점 차 이상, 7회 7점 이상 점수차가 나면 콜드게임이 선언된다. 압도적인 승리를 피하는 자비규칙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한 팀이 일방적으로 완전히 앞서가면 실내축구 경기에서는 점수판을 더 이상 바꾸지 않는다. 미국 유소년 농구리그에서는 10점 이상 이기기 시작하면 전면압박수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경기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자비규칙들이 많이 존재한다.
스포츠는 경쟁의 형태에 따라 간접경쟁과 직접경쟁으로 나눠볼 수 있다(Sailors, 2010). 간접경쟁 경기는 육상, 볼링, 양궁, 사격, 수영, 스키, 골프 등이다. 간접경쟁에서는 한 선수의 퍼포먼스가 다른 선수에게 거의 혹은 아무 영향이 없다. 이런 경기에서 참가자들은 상대방의 진행과 독립적으로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예를 들어, 두 볼링선수가 경쟁을 하기로 했는데 우월한 선수의 평균점수가 230 이고 열등한 선수는 100 이상을 못 넘어봤다고 하더라도 두 선수는 여전히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승부의 결과가 뻔하더라도 성취의 가능성과 개인의 탁월함 발휘는 여전히 두 선수 모두에게 남는다. 승자나 패자 모두 개인기록을 깨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압승에 관한 논쟁은 볼링처럼 간접경쟁을 요하는 종목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 테니스, 농구, 태권도, 야구처럼 직접경쟁을 하는 종목에서는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전자에서는 초점이 개인성취에 있는 반면 후자에서는 특정 상대를 이기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직접경쟁에서 선수들은 스스로 잘 하려고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따라서 볼링에서는 자비규칙이 요구되지 않으나 야구에서는 요구된다.
시간제한이 있는 종목의 경우는 점수차가 어떻든 결국 시간이 다 될 것이나, 이닝이나 시간제한이 없는 종목의 경우는 이론상 자비규칙 없이는 끝없이 경기가 지속될 수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진 이닝 수가 지난 후 한 팀이 되돌릴 수 없는 리드를 하게 되면 경기를 멈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 야구의 경우 5이닝을 마친 후 10점을 리드하면 이 규칙이 적용된다. 많은 야구 시합이 하루에 한 경기 이상 하게끔 되어있기에, 한 팀의 우월성이 분명히 드러난 경기에서 선수들이 체력이 고갈되거나 부상당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포츠란 것은 탁월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이처럼 한 팀으로 승리가 치우친 경우, 잘 하는 팀은 충분한 도전을 못 받고 열등한 팀은 너무 실력 차가 나 그들의 기술을 증진시킬 만큼 잘 겨뤄볼 수도 없기에 두 팀 모두 탁월함을 위해 노력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Sailors, 2010). 두 팀 모두 이렇게 무의미한 시합보다 연습을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가치 있는 상대를 만나 기술을 시연할 기회도 없고 우월한 상대에 맞서 결연한 투쟁을 벌이며 기술을 습득할 수도 없는, 이렇게 둘 다에게 이로울 것 없는 경기를 지속하는 것은 두 팀에게 모두 도움이 안 된다.
이처럼 이미 승리가 확보된 편중된 시합의 경우 자비규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두 가지 명분이 있다. 첫째, 이러한 시합이 진정한 경쟁을 포함하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진정한 경쟁이란 서로 탁월함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데, 팀들 간의 실력차이가 너무 커 자비규칙을 적용해야 할 정도라면 탁월함 추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Feezell, 1999; Gaffeny, 2017; Kretchmar, 2017). 둘째, 현실적 이유이다, 한 팀이 다른 팀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경기를 지속하는 것에서 얻을 이득의 가능성이 부상이란 훨씬 현실적인 위험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Fraleigh 1982; Simon, 2018).
물론 Dixon(2000), Morgan(2017)Russell(2018)의 주장처럼 압승이 팀들 간의 상대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어 탁월함을 측정하게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비규칙을 적용해도 이긴 팀은 큰 점수 차로 이겨 상대적 탁월함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고, 동시에 두 팀의 코치들은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여 불필요한 부상을 피하고, 새로운 전술을 시험해보고, 덜 숙련된 팀원들이 뛰어볼 기회를 줄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도 잘 처리할 수 있다(Torres & Hager, 2007). 물론 자비규칙을 적용하면 축구에서 열 골을 넣는 공격력이나 야구에서 한 선수 혼자 10타점, 도루 열 개 같은 압도적인 플레이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연히 불평등한 시합에서 이렇게 얻은 승리는 별로 인상적이지도 않고 강력한 공격력만큼 허약한 수비력만 드러낸다.
축구, 농구, 배구, 야구와 같은 팀스포츠의 경우, 한 팀이 다른 팀을 압도적으로 앞서 있는 경기에서 조롱과 막말, 앙갚음은 거의 일어난다(Fraleigh, 2018; Sailors, 2010; Simon, 2018). 절망이 커질수록 선수들이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해소하려고 하기에 부상의 위험도 커진다. 지고 있는 팀의 코치들은 상대의 사소한 작전에도 감정적으로 예민해한다. 양 팀의 팬들 역시 경기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상대팀 팬들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심판과 경기진행자들도 그냥 최대한 빨리 경기를 끝내버리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야구와 소프트볼의 경우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진다. 이러한 상황에는 자비규칙이 더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승부가 이미 완전히 기울어진 편중된 경기에서는 이기는 팀이나 지는 팀 모두에서 불미스러운 행동, 특히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이 나올 확률이 높다(Fraleigh, 2018; Sailors, 2010; Simon, 2018). 예를 들어, 4연패에 빠져 있는 팀이 오늘 경기에서도 15대 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기는 팀이 기습번트와 도루를 하고, 투수는 타자들과 지속적으로 몸 쪽 승부를 하여 몸에 맞는 공을 세 번이나 던졌다면, 양쪽 팀 모두에서 최악의 행동을 끌어내는 것을 현실적으로 피하기 어렵다. 스포츠맨십은 모든 경쟁자들이 항상 서로에 대한 존중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스포츠맨십을 가진 승리자라면 지고 있는 상대편을 모욕하고 조롱해서는 안 되며, 패자에게 감사해야 하며 그들의 실망을 위로해줘야 한다(Feezell, 1986; Gaffney, 2018; Keating, 2018; Simon, 2018). 하지만 스포츠정신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놓고, 선수들에게 스포츠맨십을 가진 승리자가 되기를 강조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러한 경우 자비규칙이 선수들을 집단행동의 특징인 부도덕성에 의해 불붙는 최악의 본능으로부터 구제해줌으로써 스포츠맨십을 유지할 수 있다.

결론

스포츠 속 경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많은 가치들이 있다. 혹자는 경쟁에서 승리보다는 패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야구 감독이었던 Christy Mathewson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물론 패배는 고통과 좌절을 수반하지만, 패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과 배움,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따라서 경쟁에 참여한 선수들에게 “모두가 승자”라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Frankfurt(2006)는 “가혹한 현실을 알고 그에 맞서는 것이 현실을 모르고 있는 것보다 이롭다”고 주장하였다. 즉, 현실로부터 눈을 가리는 것은 현실의 위험이나 위협을 전혀 감소시키지 않으며, 현실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야기하는 위험을 성공적으로 다룰 가능성 역시 커진다. 그러므로 스포츠 속 패배의 고통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기만적일 뿐 아니라, 그들에게 어떻게 용기를 갖고 고난에 대처하며 우아하게 패배를 대하는지 가르쳐줄 소중한 기회를 앗아간다. 이는 성인스포츠 뿐만 아니라 유소년스포츠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을 삶의 피할 수 없는 일부분인 패배와 실망에 노출시켜주어야 한다.
위와 같은 주장을 지금껏 논의한 승부가 이미 갈린 상황에서도 의도적으로 점수차를 더욱 벌리려는 경기에도 적용시켜, 어린 선수들이 그렇게 굴욕적인 패배를 겪어보는 것이 그들에게 큰 패배 후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약간의 약이 좋다고 해서, 더 많은 약은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어린 선수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기 위해 벌을 줄 수 있지만, 벌은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들을 불구로 만들어버릴 만큼 가혹해서는 안 된다. 벌의 대가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큰 차이로 지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처참하게 지는 것은 너무 가혹해서 어린이가 그냥 포기하고 다시는 그 스포츠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할 수 있다.
자비규칙은 큰 차이로 이기는 승리를 없애버리려는 게 아니라, 대신 의도적인 압승에 수반되는 해로움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자비규칙은 이기는 팀이 자비규칙이 적용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득점을 덜 하려고 대강 하는 것보다 더 정직하고 바람직한 방식이다. 스포츠맨십이 패자는 승자에게 박수와 축하를,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스포츠에서 자비규칙은 장려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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