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 부정행위의 개념적 모호성에 관한 소고

A Study on the Conceptual Ambiguity of Cheating in Sport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Sport Sci. 2021;32(4):522-529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1 December 31
doi : https://doi.org/10.24985/kjss.2021.32.4.522
1Kookmin University
박성주1,
1국민대학교 스포츠교육과 교수
*Correspondence Sungjoo Park sjpark54@kookmin.ac.kr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S1A5A2A01045896).
Received 2021 September 30; Revised 2021 November 15; Accepted 2021 November 15.

Abstract

[목적]

이 논문의 목적은 스포츠에서는 어떤 행위가 부정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근거가 너무나 애매하고 모호함을 증명함으로써 스포츠 속 행위에 관한 도덕적 평가의 근거는 스포츠공동체 내부의 윤리적 관습에서 찾아야 함을 논구하는 데 있다.

[방법]

이러한 목적을 위해, 먼저 스포츠에서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스포츠에서 도덕적 행위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근거로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칭찬을 부과할 수 있는지에 관해 살펴봄으로써 스포츠 규범의 복합성과 모호성을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저명한 도덕철학자들과 스포츠철학자들의 부정행위 개념에 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부정행위의 개념 자체는 스포츠 속 부정행위 식별을 위한 유용한 도덕적 나침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끝으로 스포츠공동체가 특정 방식으로 행위의 규범적 자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천적 이유가 스포츠 관행이 생산하는 실천적 이유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을 구명하였다.

[결과]

본고는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는 개념의 지위나 자격을 갖고 있지 않기에 스포츠 속 윤리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스포츠 자체 입법화된 관습적 규범을 그 출발점과 윤리적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론]

따라서 경기장에서 벌어진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는 스포츠 외부의 독립적인 이성에 기반한 철학적 검증에 의존하기보다 스포츠공동체 내부에 작동 중인 관습적이고 평가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Trans Abstract

PURPOSE

This study aims to show that the ground for moral condemnation for an act, including cheating, is too vague and ambiguous in sports. Further, in sports, such condemnation and moral assessment must be found in ethical conventions within sports communities.

METHODS

I discuss how to distinguish between acceptable and unacceptable conduct in sports—what exactly is a moral action in sports, and on what basis moral condemnation or praise can be imposed on an action. These are discussed to understand the complexity and ambiguity of sports norms. Next, by examining the concept of cheating offered by prominent moral philosophers and sports philosophers, I argue that the concept of cheating does not have a useful moral compass for identifying cheating in sports. Finally, I show that the practical reasons used by sports communities to justify the normative qualification of actions in a specific way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practical reasons produced by sports practices.

RESULTS

I argue that, since cheating in sports does not have the status or qualification of a concept, the evaluation of ethical behavior in sports should be based on the conventional norms instituted within the realm of sport as its starting point and moral basis.

CONCLUSIONS

Therefore, the normative evaluation of whether an action in sports has been ethically justified should be undertaken from a conventional evaluative perspective operating within the sports community rather than relying on a philosophical verification based on independent reason outside sports.

서론

FIFA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한일전이 펼쳐지고 있다. 승패에 따라 8강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이다. 0:0으로 팽팽한 경기가 진행되던 중 한국 주전 공격수 K는 일본 수비수 P의 태클에 그라운드에 쓰러져 오른쪽 무릎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P선수는 심판의 경고를 받았고, K선수는 결국 다른 선수로 교체됐다. P선수의 고의성은 알 수 없지만 P선수의 축구화 바닥이 다소 높이 들려 K선수의 무릎 쪽으로 향하는 장면이 느린 화면에 포착되었다. 결국 경기는 1:0으로 일본이 승리하면서 한국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가 끝난 후 P선수는 한국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 P선수의 인성을 비난했다. 그런데, P선수는 소속 팀에서 다른 주전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지만,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지속적인 기부 및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2군 후배들에게도 물품 지원을 수년 동안 해오고 있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P선수의 스포츠 속 행위(태클)는 부정한 행위일까? P선수의 행위를 통해 P선수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L선수는 올림픽 육상 5,000m 결승에 진출한 메달이 유력한 선수 중에 한 명이다. 5,000m 결승 경기, 예상대로 L선수는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트랙을 도는 중 앞에 달리던 A선수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바로 뒤에 있던 L선수도 이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4년간의 고된 훈련을 견뎌내며 기다렸던 올림픽 메달의 꿈이 한 순간에 날아 가버린 상황이었다. L선수는 억울함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넘어진 A선수의 상태를 살피며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A선수는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고, L선수는 함께 레이스를 끝내자며 A선수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뛰었다. L선수는 A선수와 함께 텅 빈 트랙을 천천히 돌며 마지막으로 골인했다. 경기가 끝난 후, L선수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L선수의 인성을 칭찬했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의 L선수는 세금탈루, 음전운전, 후배폭행 등 그동안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선수이다. L선수의 스포츠 속 행위는 도덕적 행위일까? L선수의 행위를 통해 L선수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위의 두 사례처럼 스포츠 속 관찰된 행동을 통해 특정 선수의 도덕적 품성을 평가하는 것은 합당한 것일까? P선수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았고, L선수는 도덕적으로 칭찬받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난하고 칭찬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선수들의 행동인가, 선수들의 인성인가, 둘 다인가? Foot(2002)Annas(2011)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때 행위자의 감정이나 생각 같은 개인의 내적 상태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P선수의 인성을 비난하는 이유는 P선수가 한국의 공격수 K선수를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즉, P선수의 행동만큼 그 행동의 의도가 P선수의 인성을 평가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P선수의 거친 태클은 일본 팀의 승리를 위해 상대 공격수를 다치게 하려는 내면의 의도가 표출된 것이기에 P선수의 인성을 나쁘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L선수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칭찬의 이유는 자신이 느끼는 실망과 슬픔을 앞서 쓰러진 동료선수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공감하며 동료선수를 원망하는 대신 그를 도왔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즉, L선수의 행동만큼 그 행동의 동기가 L선수의 인성을 평가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P와 L선수의 ‘관찰된’ 행위의 원인을 ‘관찰되지 않는’ 그들 내면의 마음 상태에 기반하여 도덕적 평가를 내린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의 어떤 행위가 부정한 행위 혹은 윤리적 행위가 되는 이유는 그 행위가 만들어내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자가 가진 동기 혹은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글의 목적은 스포츠에서는 어떤 행위가 부정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근거가 너무나 애매하고 모호함을 증명함으로써 스포츠 속 행위로부터 행위자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발생하는 문제점을 밝히고, 스포츠 속 행위에 관한 도덕적 평가의 근거는 스포츠공동체 내부의 윤리적 관습에서 찾아야 함을 논구하는 데 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위해, 먼저 스포츠에서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스포츠에서 도덕적 행위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근거로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칭찬을 부과할 수 있는지에 관해 살펴봄으로써 스포츠 규범의 복합성과 모호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저명한 도덕철학자들과 스포츠철학자들의 부정행위 개념에 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부정행위의 개념 자체는 스포츠 속 부정행위 식별을 위한 유용한 도덕적 나침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보고자 한다. 끝으로 Joseph Raz(2003)의 사회적 의존성 이론(social dependence thesis)과 William Morgan(2020)의 관습주의(conventionalism) 이론에 대한 고찰을 토대로 스포츠공동체가 특정 방식으로 행위의 규범적 자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천적 이유가 스포츠 관행이 생산하는 실천적 이유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을 구명하고자 한다. 스포츠와 같은 사회적 관행은 그 관행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가치, 신념, 전통, 전제들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본고는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는 개념의 지위나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경기장에서 벌어진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는 스포츠 외부의 독립적인 이성에 기반한 철학적 검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스포츠 자체 입법화된 관습적 규범을 그 출발점과 윤리적 근거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려고 한다.

스포츠 규범의 복합성과 모호성

부정(不正)의 사전적 정의는 ‘올바르지 아니하거나 옳지 못함’이다. 따라서 부정행위란 올바르지 않거나 옳지 못한 행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올바르지 않거나 옳지 못한 행위일까? 도덕철학자 Bernard Gert(1998)Stuart Green(2006)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부정행위는 속임수나 은밀함을 포함한다. 즉, 대부분의 부정행위는 그 행위가 비밀리에 행해지거나 중요한 정보를 숨기는 방법을 찾는 등 기만적이거나 은밀하다. 예를 들면,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자신의 약물사용 사실을 숨기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탈세자는 자신의 세금 탈루 정보나 흔적을 숨기려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무엇을 숨기려 하지 않더라도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행위 또한 존재한다. 가령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험악한 인상의 사람이 식당 앞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에 끼어드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무도 맞서지 않을 걸 알고 공개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분명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따라서 Gert(1998)는 부정행위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속임수와 은밀함에 더해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자에게 유리한 방식의 규칙위반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행위를 부정행위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은밀하고 기만적이며 규칙에 위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정행위의 개념이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축구 선수 P가 자신의 팀이 1:0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의 종료 직전에 고의적인 핸드볼 반칙으로 상대팀의 결정적인 골을 막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상대팀 선수들은 심판에게 달려와 축구공이 P의 팔에 맞았다고 항의했지만, 심판은 P의 핸드볼 반칙을 정확히 목격하지 못해 경기를 지속시켰고 결국 P선수의 팀이 잠시 뒤 승리한다. P의 행위는 공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P선수는 경기 도중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행위가 심판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자신의 핸드볼 반칙에 대해 숨기려는 시도는 없었다. 즉, P선수의 행동은 발각되지 않았지만, P선수 역시 규칙위반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기가 끝난 후 왜 심판을 속였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P선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심판을 속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었습니다. 심판이 반칙 선언을 했더라면 나도 이의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판이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나에게 물어봤다면, 나 역시 사실대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고의로 규칙을 어기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고 시도하거나 의도하는 건 별개의 것입니다”(Russell, 2014: 306). 그렇다면 이제 본고가 다루고자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P의 행위는 부정행위일까?

스포츠에서는 위와 같은 유사한 사례들이 실제로 자주 발생하며, 이런 반칙 행위들은 대부분 부정한 행위로 간주된다. 그런데 문제는 부정행위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규칙을 위반하며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과 개념적으로 혼동된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규칙을 위반하고도 걸리지 않는 것이 꼭 누군가를 속이려는 시도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필사적이거나 계산된 시도가 걸리지 않겠지 하는 희망과 결합한 것일 수 있다. 스포츠에서 선수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벌칙을 받을 것을 알고도 전략적으로 누군가를 속이거나 규칙을 위반한다. 이것을 흔히 ‘전략적 반칙’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모든 전략적 반칙은 부정한 행위일까?

도덕철학자들과 스포츠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부정행위 개념에 관한 전제에는 반드시 두 가지 행위를 포함한다. 하나는 은밀하게 ‘누군가를 속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정하게 시행되는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은 부정행위의 가장 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 조건이 스포츠 속 부정행위를 개념화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심판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오판하도록 속이는 포수의 프레이밍 기술을 생각해보자. 포수들은 심판의 유리한 판정을 받아내기 위해 포구 후 글러브를 움직이는 일종의 ‘속임수’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원래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볼’이지만 심판에게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야구에서 이러한 유형의 속임수는 용인하거나 심지어 포수의 능력으로 평가되며 장려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러한 포수의 프레이밍 행위는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경쟁자 상호간의 합의를 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야구의 성문화된 규칙을 어긴 건 아니지만 스포츠 참가자 간의 암묵적 약속을 어겼으므로, 경기를 위해 합의에 함의된 메타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Howe, 2004). 이러한 행위는 야구에서 ‘경기의 일부’로 봐야하기에 부정한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부정행위의 두 가지 핵심 요소, 즉 속임수와 규칙위반을 포함하고 있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왜 스포츠에서는 이러한 부정행위를 허용하고 실제로 장려까지 하는 것인가?

스포츠에서는 공식적으로 규칙을 위반한 행위는 아니지만 부정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선수들이 스피드는 느리지만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어 달리는 야구가 아닌 장타력으로 승부하는 야구팀의 예를 들어보자. 이 팀의 구장 관리자는 경기장 잔디 관리 핑계로 상대 팀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야와 베이스 경로에 물을 뿌려 장타력 위주로 경기하지 않는 발 빠른 상대 팀이 제대로 경기하지 못하게 한다. 축축한 그라운드 상태 때문에 번트나 도루, 히트 앤드 런 전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도 아니고, 어떠한 규칙에도 위반되지는 않지만, 분명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이 경우 명시적인 규칙위반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부정행위 개념으로 한정할 수 없는 예외적인 사례들이 스포츠에서는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달리 말해, 도덕철학자들과 스포츠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부정행위에 관한 개념정의가 너무 협소해 그럴듯한 혹은 명백한 스포츠 속 부정한 행위의 많은 예들을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례들을 모두 포함하려면, 부정행위의 개념은 스포츠철학자 Randolph Feezell의 주장처럼 “반드시 은밀하거나 기만적이지 않은 행위로, 규칙을 위반하거나 위반하지 않을 수 있으나 각 스포츠 종목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부적절한 이익 추구 방식으로 위반하는 행위”로 해야 한다(Feezell, 1988: 59-61). 그러나 Feezell이 제안한 개념의 문제는 그 범주가 너무 광범위해져 규범적 성격을 아예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스포츠에서 대부분의 전략적, 기술적 행위가 부정행위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 버린다.

Oliver Leaman(2018)은 그의 논문 『Cheating and Fair Play in Sport』에서 스포츠 속 부정행위는 그릇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부정행위는 스포츠에서 창조적 행위를 위해 기지를 발휘하게 함으로써 스포츠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Leaman(2018)은 일반적으로 부정행위로 생각되는 행위조차도 스포츠에서는 페어플레이 개념에 통합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 그는 경쟁에서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기존의 스포츠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부정행위 개념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Leaman의 견해는 부정행위는 스포츠에 발붙일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발적이며 심각한 도전이다. 그렇지만 Leaman의 주장은 이들에게 스포츠 속 용인되는 행위와 용인되지 않는 부정행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왜 부정행위를 경기 일부로 인정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페어플레이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한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설명을 요구한다. 앞선 사례에서 핸드볼 반칙을 범한 축구선수가 타인을 속이거나 자신의 행동을 숨기지 않았더라도 그의 행위를 부정한 반칙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행위란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위이기에 스포츠에서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들은, Leaman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에 도덕적 비난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정행위에 관한 명확한 개념정의가 필요하다.

스포츠 속 부정행위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스포츠에서는 어떤 행위가 부정행위일까? 일반적인 부정행위의 개념과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 개념이 다르다면, 스포츠만의 규정된 부정행위의 정의는 무엇일까? James Keating(1964)은 스포츠 부정행위를 ‘기술과 전략의 차이를 넘어선 기회의 평등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물론 이것은 스포츠에서 중요한 원칙이지만, 문제는 정확히 무엇이 스포츠에서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스포츠 부정행위는 공정하지 않은 플레이라고 하는 정도다. 많은 스포츠철학자들이 스포츠 속 부정행위란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규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부정행위를 스포츠에서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했다(Park, 2020). 특히 Fraleigh(2003)Pearson(1995)에 따르면, 부정행위는 규칙을 따르기로 한 경쟁자들의 암묵적 합의나 계약을 부정함으로써 결국 합의된 시합을 무효화시키고, 선의를 가지고 경쟁에 임한 선수들을 악용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즉, 부정행위는 스포츠경기와 ‘논리적’으로 양립불가능하며 ‘도덕적’으로도 규범에 어긋나기에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행위의 개념을 따르는 데 있어 생겨나는 심각한 문제는, 스포츠에서 모든 전략적 반칙 또한 부정행위의 범주 안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략적 반칙은 걸려서 벌칙을 받을 것을 알고도 경쟁적 이득을 얻기 위해 공개적이고 의도적으로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전략적 반칙은 경쟁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규칙을 위반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정한 행위로 간주되지 않거나 관중으로부터의 가벼운 도덕적 비난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료 30초를 남겨놓고 1점차로 뒤져있는 팀이 역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고의적 반칙을 생각해보자. 오늘날 대부분 이러한 유형의 고의적 반칙을 영리한 전술이자 승리추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위로 생각하지, 부정행위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농구의 예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전략적 반칙을 부정행위로 간주하지 않는 이유가 논리적, 도덕적 측면 모두에서 충분해 보인다. 그렇다면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부정행위 개념은 결점을 지닌다.

이처럼 전략적 반칙은 부정행위를 개념화 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었기에 많은 스포츠철학자들이 전략적 반칙을 부정행위로부터 분리하려고 시도했다. Simon(2005, 2010)은 ‘대가’를 부과하는 규칙과 ‘제재’를 부과하는 규칙을 구분함으로써 전략적 반칙이 규칙위반이 아님을 주장하고자 했다. 그는 전략적 반칙은 규칙위반에 대한 제재보다 전략을 실행하는 데 드는 대가를 포함하는 것이고, 이 경우 부과되는 페널티는 도덕적 제재를 포함하지 않기에 전략적 반칙 행위는 부정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Simon, 2005, 2010). ‘대가’라는 것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비용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다리를 건너려면 그 대가로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용이 책정된 규칙은 어떤 행위에 대한 허용 혹은 선택권을 행사할 방식들을 만들어낸다. 달리 말해, 다리를 건너기 위한 통행료처럼 무엇을 하도록 허용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규칙위반을 포함하지 않지만, 이와 반대로 ‘제재’는 도덕적으로 금지된 규칙위반에 수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반칙은 허용된 무언가를 하기 위한 ‘대가’이지 규칙위반은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Simon의 이러한 논리, 즉 전략적 반칙은 대가를 지불하는 반칙이기에 규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전략적 반칙을 부정행위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실제로 스포츠에서 특정 유형의 전략적 반칙은 지불할 가치가 있는 대가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규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통행료 지불은 분명 규칙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스포츠의 반칙 행위에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스포츠에서의 반칙 행위는 말 그대로 ‘반칙’이며, 그 행위를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는 규칙과 직접적으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는 규칙위반이 그 종목의 재미와 긴장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종료 몇 초를 남겨둔 농구의 예처럼, 규칙을 악용하여 경기의 마지막에 규칙이 제공하는 도전을 증가시키고 경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칙위반은 ‘지불해야 할 대가’로 간주될 수 있지만, 규칙이 위반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 규칙 일부가 전략적 이유로 위반될 때 이것이 스포츠 경기를 더 흥미롭고 도전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삶에서도 그렇듯이, 규칙이란 것이 원래 의도되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 악용될 수 있다는 건 익숙한 사실이다. 전략적 반칙은 분명 이러한 예 중 하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페널티를 받는 것이 규칙위반으로 간주되다 다른 상황에서는 같은 페널티가 규칙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 스포츠 속 규칙의 엄정성과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 예를 들어 농구 경기에서 종료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상대의 손목을 치는 행위는 규칙위반이 되었다가 종료 1분을 남긴 상황에서는 같은 행동이 규칙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분명 논리에도 맞지 않고 규칙의 존재 의미도 없어 보인다.

Dixon(1999)은 도덕철학자 Gert(1998)의 부정행위 개념에 관한 주장을 빌려와 스포츠 부정행위를 ‘어떤 활동에 내재된 목표 달성을 위해 규칙을 위반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는 행위’로 정의했다. 예를 들면, 스포츠에서 금지약물 복용은 명백한 부정행위인데, 왜냐하면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즉 스포츠에 내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규칙을 위반함으로써 다른 선수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Dixon의 부정행위에 관한 개념 또한 어떻게 부정행위를 전략적인 반칙과 구별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전략적 반칙도 스포츠의 내재된 목표 달성을 위해 공적 규칙 체계 안에서의 규칙위반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Loland(2002)는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를 ‘경쟁을 부적절하게 훼손하거나 약화시켜 경기나 시합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것도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즉, 무엇이 부정행위를 공개적이고 의도적인 전략적 반칙, Dixon(2008)이 언급하는 ‘실제로 규칙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교묘한 방식으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잔꾀나 기술’이라는 경기요령, 그리고 트래쉬 토크 같은 비매너적인 행동과 구별해주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략적 반칙, 경기요령, 비매너적 행동 또한 경쟁을 훼손하고 약화할 가능성을 가졌지만 오늘날 스포츠에서 허용되거나 부정한 행위로는 간주되지 않기에 이러한 행위들과 부정행위의 개념적 경계가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부정행위를 ‘스포츠 경쟁을 방해하거나 약화할 가능성을 지닌 행위’로 정의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유용할 만큼 구체적이지 않으며, 그저 심각한 잘못을 인지해 달라는 탄원에 머물 뿐이다. 따라서 Loland의 부정행위에 대한 정의 또한 의미 있는 실질적 지침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Warren Fraleigh는 부정행위를 “벌칙을 안 받기 위해 들키는 걸 피하면서, 자신이나 자신의 팀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규칙의 적절한 해석을 위반하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정의한다(Fraleigh, 2003: 168). 달리 말해, Fraleigh(2003)가 제시한 부정행위 개념의 요점은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와 부정행위가 아닌 행위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적절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다른 학자들이 제시한 개념들보다 스포츠 속 부정행위 식별을 위한 더 유연한 설명을 제공하지만, 부정행위가 ‘들키는 것을 피하려는 시도’를 필수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앞서 제시한 예들로 돌아가 보면, 똑같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고의적인 핸드볼 반칙으로 상대팀의 결정적인 골을 막은 축구선수는 자신의 핸드볼 반칙을 숨기려는 시도는 없었지만 분명 규칙을 위반하면서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구장 관리자는 들키는 것을 피하려 하지 않고 상대가 빤히 보는 와중에 그라운드 내야와 베이스 경로에 물을 뿌려 상대 팀이 제대로 경기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노마크 찬스에서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상대 선수를 막기 위해 다리를 내미는 농구선수는 자신의 행위가 들키는 것에 개의치 않고 득점이 되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다. 상대팀 최고의 공격수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게 심판에게 경고를 받더라도 거칠게 태클하는 축구선수 또한 이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들키는 것을 피하지 않았지만’ 부정한 행위라고 볼 것이다.

Feezell(1988)은 부정행위 개념에 관해 Fraleigh(2003)보다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설명을 제시하는데, 그는 속임수나 은밀함이 부정행위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Feezell(1988)은 부정행위가 불공정한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를 본질적으로 포함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이익이 타인에 대한 우위라고는 주장하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우위를 얻으려는 목적의 규칙위반이 반드시 부정행위가 아님도 수용한다. 그는 부정행위를 규칙위반 행위로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으며,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란 경기를 둘러싼 ‘규범적 분위기’를 위반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Simon(2010) 또한 Feezell(1988)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데, 그는 전략적 반칙을 규칙 체계의 일부로 보는 관습으로 인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Feezell(1988)Simon(2010)의 주장은 앞서 언급한 전략적인 규칙위반의 예들을 부정행위와 구분할 수 있는 유용한 설명을 제공한다. 더욱이 스포츠에서 무엇이 부정행위이고 아닌지를 결정할 때 스포츠 규칙과 관습의 해석이 필요함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역시나 부정행위 개념이 어떤 규범적 작업을 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려운데, 모든 것은 규칙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윤리에 관한 관습주의적 접근

많은 스포츠철학자들이 각자의 논리로 부정행위를 개념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있다. 스포츠에서 어떤 규칙위반은 부정행위로 보고, 또 어떤 규칙위반은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행위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부정행위의 개념 자체는 스포츠 속 부정행위 식별을 위한 유용한 도덕적 나침반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승리추구 혹은 경쟁적 이득 추구를 위해 규칙을 위반한 선수와 그 규칙위반 행위에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의 ‘이유’를 설명해야 할 때 실질적으로 할 말이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종료 30초를 남겨두고 1점차로 뒤져있는 팀이 역전을 노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상대에게 반칙을 범하는 농구선수나, 심판을 속여 유리한 판정을 받기 위해 프레이밍 기술을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야구선수,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어떤 윤리적 이유로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점 때문에 Morgan(2020)은 관습주의(conventionalism) 이론을 내세우며 스포츠 속 도덕적 행위에 관한 평가는 스포츠 자체 입법화된 관습적 규범을 그 출발점과 윤리적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스포츠에서의 행위를 윤리적으로 평가할 관점을 제공하는 것은 관습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활동이 아니다. 달리 말해, 누구도 스포츠 활동을 해야 한다고 도덕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스포츠에서 규범적 문제를 다룰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점이다. 그렇다고 이 점이 스포츠에 참여하여 스포츠 활동을 자신의 도덕적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무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참여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지만, 그 안에서 행위의 규범적 판단은 개인 선택의 몫이 아니다. 스포츠와 같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관행의 윤리적 관습은 개인 자격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특정 실천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으로서 서로에게 규범적 책임을 지게 만든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한 까닭은, 실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공동체 내부의 규범과 선(善)에 헌신하는 것은 Margaret Gilbert(1989: 377)가 “집단적 주체”라고 부르는 것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포츠공동체 구성원이 집단적이고 규범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주체가 된 이유는, 그들이 경기장 안에서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행동을 스포츠선수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스포츠의 바람직한 목적은 경쟁적 도전을 통해 탁월성을 추구하고 성취감과 즐거움을 끌어내는 것이며, 그러한 목적은 절제, 배려, 존중, 관대함 등의 가치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포츠 속 ‘윤리’란 스포츠공동체 구성원들이 가진 신념, 가치, 규범과 관련된 관습이고, 이 윤리적 관습이 스포츠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정당화에 이바지한다. 즉, 스포츠공동체가 오랜 역사 동안 쌓아온 개념, 신념, 가치, 규범들로 구성되어 있는 윤리적 관습이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행위를 평가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규칙위반이나 폭력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에 대한 선수들의 과도한 욕망이나 비매너적인 태도로 가득 찬 경기를 왜 나쁜 경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 혹은 전략적 반칙의 악용과 심판 판정에 대한 격렬한 항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좋은 경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가 스포츠 속 관습의 관점에서는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윤리적 관습을 제쳐놓고 추상적인 철학적 이론이나 원칙에만 기대어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행위를 평가하는 것은 우리를 미로 속에 남길 뿐이다. 스포츠에서의 도덕적 행위와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한 탐색은 스포츠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습의 이해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행위는 ‘반드시’가 아니라 단순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스포츠의 윤리적 관습이 도덕적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가 도로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운전하는 관습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윤리적으로든 아니든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오른쪽에서 운전하는 것이 지배적 관습으로 정착되면, 왼쪽에서 운전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스포츠와 같은 사회적 관행에서의 규범은 그 관행이 수행되는 방식에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스포츠 속 행위에 관한 윤리적 고찰은 스포츠의 다양한 수행방식들이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적으로 선별하고 명시하는 것이다.

스포츠에 관한 윤리적 탐색은 추상적 선(善) 개념이나 객관적 가치 척도가 아닌, 특정한 선(善) 개념과 스포츠공동체에 한정된 평가적 관점 혹은 가치 척도를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경기장 안에서의 행동이 규범적으로 정당화되는지 아닌지는 그 행동이 스포츠공동체와 구성원에게 타당한 이유로 수용되거나 거부되는 데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 속 윤리적 행위에 대한 평가를 스포츠 외부의 독립적인 이성에 기반한 도덕적 명령, 즉 칸트의 의무론이나 벤담의 공리주의와 같은 철학적 설명에 의존할 때 그러한 설명이 때론 스포츠공동체 구성원의 윤리적 직관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이다. 또한 스포츠 수행방식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정당화할 때, 특정 시대와 장소의 관행을 지배하는 내부 관습의 규범적 기준을 무시하고, 관행 자체에 규범적 외피를 두지 않은 외부의 철학적인 규범 기준을 선호하는 것이 반직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Joseph Raz(2003)의 ‘사회적 의존성 이론(social dependence thesis)’에 따르면, 문화적 가치들은 그 가치를 지탱하는 사회적 관행이 있을 때만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맥락적으로 제한된 스포츠 관행의 윤리적 가치도 마찬가지다. 스포츠공동체가 특정 방식으로 행위의 규범적 자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천적 이유를 스포츠 관행이 생산하는 실천적 이유로부터 분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타당한 판단은 스포츠공동체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내부 문제이지, 모든 공동체의 윤리적 검토에 개방된 외부 문제가 아니다. 달리 말해, 특정 스포츠 환경에서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행위가 무엇인지 규범적으로 평가할 때, 우리는 개인으로서 개인적인 신념이나 스포츠 제도 밖의 개념에 따라 그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스포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공동체에서 작동 중인 관습적이고 평가적인 관점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결론

본고는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는 개념의 지위, 즉 개념으로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정행위라는 용어가 독특한 도덕 개념이나 범주를 표시하지 못하고, 따라서 스포츠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부정행위 개념에 특별한 개념적 핵심이 없다는 주장은 놀랍게 들릴 수 있다. 부정행위는 분명히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탈세를 하고, 동료를 배신하고, 고객을 속이고, 시험 볼 때 부정을 저지르고, 이력서나 보고서에 거짓말을 하며, 물론 스포츠에서도 부정행위를 한다. 부정행위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삶의 영역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부정행위에 관한 명백한 개념이 없다는 본고의 주장은 예상치 못한 역설적 결론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본고의 주장이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의 단일개념이 그렇게 많고 다양한 현상에서 공통점을 골라내고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을지 의아해지기 때문이다. 오랜 철학의 학문적 역사에서 부정행위 개념에 관한 체계적 논의가 거의 없었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서나 저명한 도덕철학자 Bernard Gert(1998)Stuart Green(2006)이 규범적으로 독특한 부정행위 개념의 핵심 요소를 주장하고 있다. 스포츠철학자들도 부정행위라는 주제를 위 두 철학자들보다 조금 더 오래 다뤄왔다. 그러나 이들 각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개념은 스포츠에서의 행위처럼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처럼 도덕활동과 무관한, 때로는 도덕과 상반되는 사회적 관행에서는 부정행위, 나아가 윤리 개념의 모호함과 한계가 드러난다. 스포츠에서의 부정행위 개념은 기껏해야 ‘그거 부정행위야!’라는 일종의 일반적인 도덕적 불만이나 고충을 제기하는 개념 말고는 더 이상의 철학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유형의 경쟁적 이득 추구 행위에 대해 ‘그것이 왜 부정행위냐?’라는 물음에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최근 스포츠철학 문헌에서 주목받는 대안은, 규칙이 성문화된 규칙만큼이나 스포츠의 큰 부분인 일반 원칙들에 의한 해석을 필수로 한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규칙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규정이라면 원칙은 당위의 특성을 가지는 기본적인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자’는 것이 규칙이라면 원칙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와 같은 것이다. Simon은 법철학자 Dworkin의 원칙과 규칙에 관한 설명을 활용하여 ‘폭넓은 내재주의(broad internalism)’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폭넓은 내재주의 이론의 핵심은, 스포츠란 선수의 탁월함을 시험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에 규칙이 그 탁월함을 유지하고 육성하도록 ‘원칙’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의 탁월성 발휘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기회를 훼손하거나, 이 기회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의심받아야 하며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Simon, 2005, 2010; Russell, 2017).

그러나 이러한 폭넓은 내재주의 이론이 부정행위가 지닌 개념적 모호성에 대한 해결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폭넓은 내재주의 이론도 Oliver Leaman(2018)의 주장에 여전히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Leaman(2018)은 관중의 관점, 놀이적 관점, 그리고 경쟁적인 관점 모두에서 특정 유형의 부정행위는 스포츠의 실질적 가치를 향상시키기에 용인되고 수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폭넓은 내재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스포츠에 대한 도덕적 설명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다. 즉, Leaman은 스포츠에서 ‘윤리’는 스포츠를 덜 재미있고 덜 흥미로운 것으로 만든다고 본다. 그는 만약 선수들이 부정행위를 스포츠 속 한계나 장애물, 상대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스포츠는 때때로 더 흥미진진하고, 더 재밌고, 더 박진감 넘치게 되며, 따라서 스포츠의 가치도 더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전략적 반칙, 경기 요령, 승부욕, 심판에 대한 항의, 어떤 종류의 자경단 정의는 스포츠상황에서 극적인 드라마와 도전을 추가하므로 스포츠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Leaman의 입장이다. Russell(2014)은 이것을 ‘스포츠의 무도덕적 개념(the amoralist conception of sport)’이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은 우리에게 ‘스포츠선수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스포츠철학 내에서 윤리적 행위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Leaman의 도전에 답변할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Leaman은 여전히 폭넓은 내재주의 옹호자들이 자신의 도전에 대해 답변할 자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선수와 관중이 스포츠를 실제로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스포츠 속 윤리 개념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는 스포츠에서의 공정한 플레이, 윤리적인 행위가 과연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관습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필자 또한 관습주의 이론이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이슈를 다루는 데 가장 적합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개념적 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Feezell(1988)이 제안했듯, 스포츠의 ‘규범적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스포츠에서 어떤 행위가 부정한 행위이고, 어떤 행위가 바람직한 행위인지에 관한 윤리적 평가의 근거는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공동체 내부의 윤리적 관습에서 찾아야 한다. Morgan(2020)의 주장처럼 스포츠란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내부의 논리적 공간’이기에 스포츠 속 행위에 관한 도덕적 평가는 특정 목적을 가진 공동체의 관심사와 윤리적 관습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아마추어 스포츠 경우는 이상적인 신사(gentleman)의 인간상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역사와 맥락 때문에 스포츠의 목적을 ‘격식과 품위를 갖춘 모범적인 신사를 길러내는 것’으로 보는 공동체의 관심과 윤리적 관습에 맞춰진 논리적 공간이 열린다. 프로 스포츠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으로, 스포츠의 목적이 선수의 탁월성 추구이기에 스포츠를 진지한 직업적 모험과 도전으로 보는 공동체의 관심과 윤리적 관습에 맞춰진 논리적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스포츠와 같은 사회적 관행은 그 관행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가치, 신념, 전통, 전제들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스포츠 속 규범 또한 유동적이다. 그렇다면 경기장에서 벌어진 특정 판단과 행동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에 관한 질문과 논쟁이 발생했을 때, 문제 해결의 유일한 답은 각 스포츠공동체에서 작동하는 윤리적 관습과 맥락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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