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셸러의 동감론 관점에서 본 스포츠맨십 고찰

Reconsidering Sportsmanship Through the Lens of Max Scheler’s Phenomenology of Sympathy (Mitgefühl)

Abstract

PURPOSE This study provides a critical re-examination of the rationalistic and formalistic limitations of conventional sportsmanship, adopting Max Scheler’s perspective on ethics, and proposes a practice of sportsmanship that is rooted in phenomenological sympathy (Mitgefühl) and respect. METHODS This study analyzes the ethical structure of sportsmanship, drawing on a meta-ethical perspective, focusing on Max Scheler’s ethics of feeling and hierarchy of values. RESULTS To this end, we first critically analyze how formalized sportsmanship on the field fails to evoke phenomenological sympathy and emotional responsiveness toward others. Second, drawing on Scheler’s theory of emotion as a theoretical foundation, we show that true sportsmanship can serve as a mechanism for emotionally intuiting and spontaneously practicing values of dignity and mutual respect. Third, the essential energy of sportsmanship appears in the tension between the impulse to win and the spirit of mutual respect. Through this tension, sports can function as a space for character development and community ethics that goes beyond the merely competitive. In application of Scheler’s theory of genuine sympathy and hierarchy of values and analysis guided by it to specific cases in the sports field, this paper argues for the practical feasibility of sportsmanship that is based upon the love response. CONCLUSIONS In this way, this study affirms that sportsmanship is not merely an idealized norm but a living practice that fosters both respect for others and ethical sensitivity.

keyword
Max SchellerSympathyRespectSportsmanship

초록

[목적] 이 연구는 기존 스포츠맨십의 이성주의적·형식주의적 한계를 막스 셸러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조명하고, 공감을 넘어 동감(Mitgefühl)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맨십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방법] 막스 셸러의 감정 윤리와 가치 위계를 중심으로 스포츠맨십의 윤리 구조를 메타윤리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결과] 이를 위해 첫째, 스포츠 현장에서 드러나는 형식화된 스포츠맨십이 타자에 대한 동감과 감정적 응답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둘째, 셸러의 감정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타자의 존엄성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감정적으로 직관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메커니즘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규명하였다. 셋째, 승리를 향한‘충동’과 상호 존중이라는‘정신’의 긴장 속에서 스포츠맨십의 본질적 에너지가 형성되며, 이러한 긴장을 통해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를 넘어 인격 성숙과 공동체 윤리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셸러의 진정한 동감과 가치 위계론을 스포츠 현장의 구체적 사례에 적용·분석함으로써, ‘사랑의 감응’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맨십의 실질적 실천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결론] 이를 통해 스포츠맨십은 단순한 이상적 규범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중과 윤리적 감응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실천임을 확인하였다.

주요 용어
막스 셸러동감존중스포츠맨십

서 론

2025년 5월 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BO 리그 경기에서 6회초, 11:0으로 크게 앞선 A팀의 J선수가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한 직후도루를 시도했다. 경기의 흐름상 승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J선수의 태도 자체가 상대 팀과 관중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않았다. 이는 ‘큰 점수 차로 앞서는 팀은 도루를 자제한다’는 한국 프로야구의 암묵적 규범, 즉 ‘불문율’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A팀은 B팀 측에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전했으며, 이를두고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왜 문제 삼느냐”, “불문율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다”라는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었다 (Choi, 2025).

J선수의 사례는 경기 규칙을 명확히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감정적 충돌과 사회적 비난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례는스포츠 규범의 준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스포츠맨십의 윤리적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러한 맥락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란 무엇인지, 경기 규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그 너머의 윤리적 감응을 필요로 하는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를 생각해 볼 때, 2024년 파리 올림픽 테니스 결승에서 조코비치가 알카라스를 꺾은 직후 두 선수가 보여준 존중과 포옹의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스포츠맨십의 이상적 모습으로 회자된다(Azzoni, 2024). 그러나 경기 시작 전후에 선수들이 나누는 악수나 포옹과 같은 모습은 때로 단순한 의례로만 수행될 뿐, 그 안에 진정한 상호 존중의 태도가 담겨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모습은 의례적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실재적 가치로 존중하는 깊은 윤리적 감응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스포츠맨십이 단순히 규범의 수행을 넘어 감정 윤리의 본질과 연결되어야함을 시사한다.

주목할 점은 현대 스포츠에서 드러나는 이성주의적이고 형식화된스포츠맨십의 모습은 이러한 감정 윤리의 본질적 의미와 충돌한다. 이와 관련하여 규범 윤리 이론들이 제시하는 보편적 도덕 원리가 실제 스포츠 행동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묻는 메타윤리적(meta-ethical)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직까지제시되지 않고 있다(Lee, 2006). 이러한 메타윤리적 접근은 스포츠맨십이라는 윤리 개념을 단순히 외형적 행동 기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정당한 실천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Park, 2014).

실제로 현대 스포츠윤리는 덕윤리, 의무론, 공리주의가 복합적으로작용하는 양상을 보이지만(Park, 2013), 스포츠맨십의 실천적 차원에서는 칸트의 의무론적 접근이 강하게 나타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네가 동시에 그것이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라는 준칙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무조건 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원리를 제시하며, 감정을 도덕판단의 기반에서 배제한다. 이러한 원리는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제시하는 ‘보편적 행동 규범’과 ‘의무적 예의’, 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때가해지는 사회적 제재의 구조와도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러한 이성중심적 접근은 스포츠 규범을 ‘보편적 행위 기준’으로 고정시키는 데에는 유효할 수 있으나, 감정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실제 경기 현장에서는 그 실천적 설득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라 아브라하미안은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시상식 도중 동메달을 내던졌고, 앙헬 마토스는 심판의 얼굴에 발차기를 가해 영구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CBC Sports, 2008). 이와 같은 사례는 경기 후 악수나 시상식 예절처럼제도화된 규범이 반드시 도덕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 형식적 행위는 종종 외적 의무로 수행되지만, 내면의감정이나 진정한 동감에 기반한 윤리적 응답이라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Lee, 2021). 오히려 규범적 수행은 감정 없는 ‘도덕적 연기 (performance)’로 전락할 여지를 수반한다. 물론 모든 형식적 행위가 진정성을 결여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악수, 인사, 페어플레이 제스처는 스포츠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실천으로 기능하며, 반복된 윤리 행위가 습관을 형성하고 이는 다시 도덕적 감응의 계기가 될 수 있다(Velázquez, 2023).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타자에 대한 인격적 응답으로서 실현되는가’의 여부이다. 반복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윤리적 정당성은 감정적 직관과 타자와의 공명(共 鳴) 능력에 기반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칸트적 접근은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정당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과 무관하게 이성에 의해 강제된 수행으로만 작동할 때, 행위자의도덕적 자율성과 감정 기반의 윤리적 응답 가능성은 심각하게 제약된다. 결국 이러한 접근은 스포츠윤리를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기술적 규칙으로 축소시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성찰과 사유의 전환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다(Park, 2021).

이러한 칸트적 의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목할 수 있는 사상가가 바로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이다. 셸러는 20세기 초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1916) 에서 칸트 윤리학의 형식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감정적 직관과동감(Sympathie)을 도덕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는 실질적 가치윤리학을 제시했다(Scheler, 1923/2013). 셸러에 따르면, 도덕은 보편적 형식에 따라 추론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정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가치 인식에 기초해야 한다. 그는 칸트의 윤리학은 이성과 형식만을 강조하면서, 감정이 포착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 가치를모두 배제했다고 비판했다(Geum, 2003a). 무엇보다도 셸러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 존엄, 사랑 등을 느낄 때, 그 안에 이미 도덕적 의미가 ‘주어진다’고 보았다. 즉 감정은 단순한 주관적 반응이 아니라, 깊은 인간 경험을 통해 가치를 인식하게 해주는 능력이자, 도덕 판단의정당성이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보았다(Scheler, 1923/2013).

셸러에게 감정은 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직접 인식하고 응답할 수 있는 능동적 도덕 감각으로, 이성적 규범에앞서는 선험적 가치 인식 방식으로 이해된다(Cho, 1999). 그는 이러한 감정적 직관을 통해 인간이 도덕적 가치의 객관적 위계질서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도덕을 단순한 외적 규범의 준수가 아니라, 타자의 고유한 가치를 감정적으로 직관하고 응답하는 내적 실천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Geum, 2003b). 스포츠의 맥락에서 본다면, 셸러의 접근은 스포츠맨십을 단순히 강요된 도덕 규칙이나 보편 형식의 준수로 한정하지않는다. 오히려 타자에 대한 진정한 동감과 도덕적 감응의 참여로 실현되는 윤리 행위로서, 스포츠맨십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근거를 제공한다.

이에 본 연구는 기존 스포츠맨십의 이성주의적·형식주의적 한계를 막스 셸러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조명하고, 공감을 넘어 동감 (Mitgefühl)1)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맨십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스포츠 현장에서 드러나는 형식화된 스포츠맨십이 타자에 대한 동감과 감정적 응답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둘째, 셸러의 감정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타자의 존엄성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감정적으로 직관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메커니즘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고찰한다. 셋째, 승리를 향한 ‘충동’과 상호 존중·공정이라는 ‘정신’의 긴장 속에서 스포츠맨십의 본질적 에너지가형성되며, 이러한 긴장을 통해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를 넘어 인격 성숙과 공동체 윤리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셸러의 진정한 동감과 가치 위계론을 스포츠 현장의 구체적 사례에 적용·분석함으로써, ‘사랑의 감응’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맨십의 실질적 실천 가능성을 주장할 것이다.

감정 작용과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실천

막스 셸러는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심정의논리’를 이어받아 이성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감정의 논리와 법칙이 선천적으로(a priori) 주어져 있음을 주장했다. 셸러에 따르면이러한 감정의 작용은 대상 파악에서 이성보다 선행한다. 예를 들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경우, 이때 우리는 그 사람의시각적 특징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마음속에 포착되어 대응 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 느낌 속에 주어지는것이 바로 가치다(Scheler, 1923/2013). 이러한 의미에서 가치를 파악하는 감정의 작용은 언제나 이성보다 선행하여 일어난다고 셸러는말한다.

이러한 감정의 선행성은 스포츠와 같이 즉흥적 판단과 반응이 반복되는 경쟁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경기 중 선수는 상대방의 행동이나 상황을 일일이 분석한 뒤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표정, 몸짓, 경기 태도에 대한 감정적 직관이 선행적으로 작동하며, 여기서 비롯된 정서적 반응이 플레이의 윤리적 성격을 형성하기도 한다. 승부의 긴장 속에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인식이나, 패배한 상대에대한 존중, 부당한 플레이에 대한 분노는 모두 이성적 사유를 거치기이전에 감정적으로 포착된 가치 반응에 가깝다.

그러나 셸러는 감정의 작용을 단순한 느낌(feeling)에 국한시키지않는다. 그는 감정 상태(Gefühl)와 감정 작용(das Fühlen)을 구분하며, 전자는 개인의 일시적인 심리적·신체적 정서를 의미하고, 후자는 외부 대상에 지향되어 가치를 인식하는 능동적 작용으로 이해한다 (Geum, 2003b). 이 구분은 스포츠 현장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예컨대 경기 중 선수의 분노나 긴장은 감정 상태일 수 있지만, 경기후 패자에게 손을 내밀거나 심판의 판정에 겸허히 따르는 행동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상대방의 가치를 인식하고 존중하려는 감정적 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감정 작용은 도덕적 가치에 감응하고응답하는 윤리적 실천 작용으로 작동한다.

셸러는 인간이 감정을 통해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Scheler, 1923/2013). 특히 셸러가 최상위의 고차적 가치로 여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 감정이 더 높은가치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그 가치를 실천하려는 내적 근거가 된다(Cho, 1999). 그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호의나 공감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를 가치적으로 인식하고 응답하는 윤리적 감정 작용으로, 이러한 가치의 방향성과 실천적 힘을 가장 온전히 구현하는형태라 할 수 있다(Scheler, 1923/2013).

이러한 사랑의 감정 구조는 스포츠와 같은 경쟁 상황에서도 가치적실천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스포츠에서 셸러가 말하는 사랑은 곧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감정적 기반이며, 그 내면 구조를 형성한다. 그것은 단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 상대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감정적으로 응답하며, 경쟁 속에서도 공동의 윤리적 가치를 고양하려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부상을 당한 상대에게 몸을 부딪치지 않도록 플레이를 조절하거나, 패배한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단지 스포츠 규범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이는 타자 안에 내재된 존엄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감정적으로 발견하고, 그에 응답한 실천이다. 이러한 감정적 응답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고차 가치를 향해 감정이 반응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감정 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스포츠맨십이 진정한 윤리적 실천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규범 수행을 넘어서, 감정을 통한 가치 인식과 감응이 전제되어야 한다.

셸러는 감정을 단순한 주관적 반응이나 무작위적 정서로 보지 않았다. 그는 감정이 인간의 심정 안에 구조화된 질서로 주어지며, 이 질서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사랑하고, 어떤 가치를 경시하거나 미워하는가를 결정짓는 정서적 방향성이라고 보았다(Lee & Lee, 2024b ). 감정은 사랑과 미움, 호감과 혐오 같은 이분법적 구도로만 작동하지않으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과 무관심, 존경과 반감 같은 중간감정들이 위계와 연속성 속에서 질서를 이룬다(Cho, 1999). 셸러는이러한 감정 구조가 인간이 무수한 가치들 사이의 위계를 직관적으로감응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감응의 질서를 바탕으로 더 고차적인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는 실천이 바로 윤리라고 보았다(Geum, 2003a). 결국, 사랑은 가치를 드러내고 미움은 가치를 차단하는 감정의 방향성을 통해 인간은 도덕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이 감정 질서 자체를 전도시키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익, 효율, 물질적 유용성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고차적 가치를 감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효용성과 쾌락을 추구하는 계산적 주체로 환원된다(Geum, 2015). 그결과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과 인격적 성장은 억압되고, 외적 성취와경쟁 논리가 도덕 판단을 대체하게 된다. 셸러가 경고했듯, 감정의 방향성을 왜곡하는 사회는 인간 존재의 윤리적 기반을 붕괴시키며, 인간을 타자에 대한 사랑이 아닌 지배와 도구화의 논리로 이끈다(Lee & Lee, 2024b).

이러한 감정 구조의 왜곡은 스포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대스포츠는 감정의 윤리적 구조가 가장 첨예하게 시험받는 장이다. 셸러에 따르면,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나 반응이 아니라, 인간이 가치 질서를 직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스포츠가 자본주의적 성과주의와 승리 지상주의에 잠식되면서 감정의 방향 역시 효용성과 지배로 전도된다. 이로 인해 스포츠는 고차적 가치를 감응하고 실현하는 윤리의 장이 아니라, 수단화와 지배의 논리를 내면화한 장소로 변질된다. 감정의 왜곡은 윤리의 해체로 이어지며, 스포츠의 도덕적 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스포츠를 단지 경기 수행의 공간이아닌, 사랑과 존중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감응의 실천장으로 회복해야 한다.

셸러가 강조한 심정의 가치 질서에 감응하는 정서적 접근은, 스포츠를 인간화(humanization)의 공간으로 회복시키는 결정적 계기가될 수 있다. 이는 공정성이라는 규범을 단순히 지키는 차원을 넘어, ‘왜 공정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물음을 감정적으로 자각하고, ‘왜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를 마음으로 수긍하게 만드는 도덕 감수성의형성과정이다(Park, 2021). 나아가 이러한 감정의 작용은 타자의 존재를 단순한 경기 상대가 아닌 인격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 존재에 응답하려는 내면의 윤리적 움직임으로 확장된다. 이로써 우리는 스포츠속에서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적 삶의 의미를 체험하며, 일시적감정 반응을 넘어서는 동감적 참여, 곧 사회적 반성과 객관적 이해로서의 동감에 도달하게 된다.

셸러에 따르면 진정한 동감은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타자의존재를 사랑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동감은 사랑이라는 고차적 감정 구조를 기반으로 할 때에만, 타인의 고유한 감정 상태에 윤리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Geum, 1999). 예컨대, 승패를 떠나 상대의 열정에 박수로 응답하거나, 경기 후 서로의 노고를 껴안으며 인정하는 장면은 치열한 경쟁을 넘어선 동감의 순간을 보여준다. 이러한행동은 단순히 스포츠 규범을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타자의 인격과가치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가능해지는 감정적 감응이다.

물론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도 일시적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있다. 그러나 진정한 동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타자를 도구나 판단의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인격 그 자체로 인식하게 하는 윤리적 통로다 (Cho, 1999). 또한 스포츠 현장에서 관중이 부상당한 상대 선수에게안타까움을 느끼거나, 경기 후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보고 함께 슬퍼하는 감정은 감정이입의 전형이다. 그러나 셸러에 따르면 이는 타인의 고통에 단순히 심리적으로 동화된 일시적 반응일 뿐, 그 존재를 윤리적으로 수용하는 깊이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동감은 상대 선수를 단순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규칙과 가치를 공유하는 윤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려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태도는 타자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수용하고 응답하려는 사랑의 감정 구조를 통해 가능해진다. 경기의 매 순간, 선험적으로 작동하는 감정은 단순한 감각을 넘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윤리 실천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진정한 스포츠맨십은 바로 이 감정적 감응 속에서, 타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응답할때 비로소 완성된다.

충동과 정신의 조율: 스포츠맨십 본질의 근원적 에너지

진정한 스포츠맨십은 단순히 경기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승리를 향한 충동적 ‘열망’과 타인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려는 ‘정신’의 긴장 속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실존의 형태다. 공정성, 자제력, 용기, 끈기와 같은 덕목으로 대표되는 스포츠맨십은 경쟁 속에서도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존중하고,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며, 타인을공정하게 대하려는 태도를 포함한다(Feezell, 1986; Gaffney, 2018; Keating, 2018; Simon, 2018; Park, 2019). 그러나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 이러한 존중의 모습이 진정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경기 후 나누는 악수는 외형적으로는 존중의 표현이지만, 그 내면의 진심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모습은 ‘예의’라는규범의 반복일 수도 있고, 타인을 진정한 경쟁자로 존중하는 내면의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같은 행위가 상황과 선수의 태도에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맨십의 본질적 가치가 쉽게 흐려지고 혼란을 불러온다.

막스 셸러의 감정 윤리학은 스포츠맨십의 형식적 의미를 넘어, 그진정한 의미와 윤리적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셸러는 인간 존재를 ‘충동(Trieb)’과 ‘정신(Geist)’의 긴장 속에서 이해했다(Lee & Lee, 2024a). 충동은 생명적 본능으로, 승리와 자기실현을 향한 강력한 에너지를 일으킨다. 반면 정신은 타인을 인격적으로 대하려는 도덕적 인식과 윤리적 자각의 능력이다. 그러나 셸러는정신이 충동을 억누르거나 대체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정신은삶에 대해 무능력자”라고 언급하며, 단지 이념만으로는 생명적 현실을 완전히 감싸지 못한다는 점을 역설했다(Scheler, 1923/2013). 결국 고차원적 가치 실천은 충동과 정신 사이에서 순간마다 이루어지는조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Cho, 1999).

실제로 셸러는 모든 가치가 쾌락 가치 → 생명 가치 → 정신 가치 → 성스러운 가치로 이어지는 보편적·객관적 위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이러한 가치 위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승리와 성취를 향한 생명적 가치는 경쟁의 긴장 속에서 선명히 부각되며, 동시에 공정성과 타자 존중이라는 정신적 가치도 규범적 이상으로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위계는 경기의 긴장과승리지상주의 문화 속에서 왜곡되고 전도되기 쉽다. 실제로 승부와결과를 중시하는 풍토에서는, 승리를 향한 충동이 과도하게 정당화되며,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정신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은 셸러가 말한 충동과 정신의 긴장을 더욱 복잡하게얽히게 만들며, 스포츠맨십의 본질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셸러의 관점에서 충동과 정신의 긴장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윤리적 가능성의 원천이다. 만약 이 긴장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단순히 충동의 노예가 되거나, 내면의 윤리적 긴장 없이 규범만을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무력한 이념의 담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Lee & Lee, 2024a).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긴장이 사라지면 생물학적 경쟁 충동만 남아 타자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거나, 반대로 경쟁의 긴장 없이 정신만 남아 공허한 규범이나 무의미한 악수와 같은 의례적 행위로만 작동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긴장은 스포츠맨십을 잉태하는 근본적 에너지가 된다.

예컨대, J선수의 사례는 이러한 긴장이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 어떻게 가치 위계의 충돌로 드러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J선수는 큰 점수차이로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데뷔 첫 안타의 의미를 더욱 빛내기 위해 도루를 시도했는데, 이는 자기실현을 향한 강한 열망이 표출된 충동적 행동이었다. 같은 팀의 팬들은 이를 ‘승리를 향한열정’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셸러의 가치 위계에서 ‘생명 가치’로 직관된 것이다. 반면, 상대팀과 그 팬들은 이 행위를 ‘상대를 배려하지않는 행동’으로 비판하며, 상호 존중과 배려라는 ‘정신 가치’를 더 높은 위치의 가치로 감응하고 평가했다. 셸러의 관점에서는 이처럼 동일한 행위가 서로 다른 가치 위계로 해석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정신적 가치가 생명 가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이 논쟁은 단순히 경기의 승패를 넘어 압승 상황에서의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딜레마를 드러내며, 결국 셸러의 이론에 따라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정신적 가치가 더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Park(2021)은 승부가 이미 결정된 경기에서도 선수나팀이 점수 차를 의도적으로 최대화할 경우, 그러한 패배를 경험하는상대팀은 깊은 수치심과 인간으로서의 폄하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본질, 즉 타자의 존재와 존엄을 어떻게 고려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이처럼 승리지상주의적 태도는이러한 가치 전도를 정당화하며, 상대방의 가치를 도구화하고 존중의가치를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셸러가 말한가치 위계의 충돌과 긴장을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만들며, 스포츠맨십의 본질을 다시금 환기한다.

스포츠맨십은 단순히 규범을 반복하거나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순간마다 직관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충동과 정신의 긴장을 새롭게 조율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다. 동시에 스포츠맨십은 단순히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와 입장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태도로나아간다. 이러한 태도는 스포츠를 단순한 경쟁의 장이 아닌, 서로의가치를 존중하며 공정하게 겨루는 인격적 실천의 장으로 만드는 본질이다. 셸러가 말한 ‘가치 감응’은 인간의 마음이 가치를 직관적으로인식하고, 그 가치에 진정으로 동조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 선수들은 승리의 기쁨, 상대방에 대한 존중, 관중의 기대, 팀의 명예 등 다양한 가치를 동시에 체험하며, 이를 직관적으로판단하고 실천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의 판단이 진정한 윤리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윤리 의식의 내면화와 타자에 대한 동감적태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J선수의 사례는 바로 이러한 점을잘 보여준다. ‘승리를 향한 열정’과 ‘상대에 대한 배려의 결여’ 사이의갈등은 가치 위계의 충돌과 긴장을 통해 스포츠맨십의 본질적 가치가선명하게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러한 긴장은 스포츠를 단순한경쟁의 장이 아닌 인격적 실천의 공간으로 확장시키며, 스포츠맨십을끊임없이 새롭게 조율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진정한 동감: 스포츠맨십의 본질적 실현

뒤쫓아-느낌(Nachfühlen)과 반응으로 구현되는 스포츠맨십의 동감

경쟁 스포츠의 핵심적 요소는 승리와 패배라는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때로 승리만을 절대화하며 상대의 감정과 존재를 경시하는 문제를 초래한다. 스포츠맨십은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공정하게 겨루려는 윤리적태도를 뜻한다. 스포츠맨십을 단순히 규칙 준수나 형식적인 예의에국한한다면, 그것은 그 본질적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2025년 프랑스 오픈 테니스 경기에서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보여준 행동은 스포츠맨십의 진정한 동감의 본질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당시 알카라스는 미국의 벤 셸턴과의 경기 중 두 번째 세트 초반, 극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셸턴은 알카라스의 손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먼 코스로 패싱샷을 시도했다. 알카라스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라켓을 던지듯 휘두르며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순간 공중에서 뒤집힌 그의 라켓이 공과 접촉해 공을 다시 상대 코트로 넘겼고, 이 장면은 모두가 보기에 환상적인 하이라이트 샷처럼 보였다(Fendrich, 2025).

처음에는 심판도, 관중도, 중계화면을 지켜보던 이들 모두 이 샷을정당한 것으로 인식했다. 알카라스에게 포인트가 주어져 40-30으로앞서게 되었지만, 그는 공이 라켓과 맞닿을 때 이미 라켓을 손에서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규정상 이 플레이는 허용되지않기에, 포인트는 셸턴에게 돌아갔고 경기는 30-40으로 역전되었다. 심판이 이 상황을 관중들에게 알리자, 관중들은 경쟁의 순간에서도정직함과 공정, 그리고 상호 존중의 가치를 보여준 알카라스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Kim, 2025).

스포츠맨십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 이 사례는 셸러가 말한 진정한동감의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셸러에 따르면 동감은 본래의 의미에서 타인의 체험에 실제로 참여하고 그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감은 ‘타인의 느낌을 뒤쫓아-느낌’과 ‘그에 대한 반응’이라는 두 단계를 필요로 하며, 이 중 뒤쫓아-느낌은 동감의전제 조건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동감이 아니다. 진정한 동감은 타인의 체험에 참여하려는 의식적 의도를 수반한다.

알카라스는 먼저 셸턴의 상황을 뒤쫓아-느끼며, 규정 위반으로 셸턴이 부당한 포인트 손실을 겪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위반 사실을 고백했다. 만약 그가 단순히 ‘아, 저 선수가 억울하겠네’라고 생각만 했다면, 이는 셸러가 말하는 뒤쫓아-느낌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뒤쫓아-느낌은 타인을 아직 실재가 아닌 영상으로 취급하며 타인의 체험에 무관심적인 태연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Scheler, 1923/2013).

그러나 알카라스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셸턴의 체험에 참여하려는의식적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는 타인과 나 사이에 간격 및 거리감, 분리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셸턴을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나와똑같은 실재적 존재로 취급했다. 본래적 의미의 동감에서는 뒤쫓아- 느낌을 통해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주어지고 그것의 가치적 질료에동감이 지향하여 반응한다(Cho, 1999). 알카라스는 셸턴이 느꼈을부당함의 가치적 질료를 파악하고, 그것에 윤리적으로 반응하였다.

이때 나의 동감과 타인의 감정은 분리된 서로 다른 사실이다 (Scheler, 1923/2013). 알카라스의 사례는 이 구분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는 셸턴이 겪을 부당한 손실과 알카라스의 윤리적 책임감은서로 다르며, 알카라스의 행동은 함께 느끼는 자, 동감하는 자로서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셸턴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지만, 셸턴의 실재적 존재와 그의 권리를 인정하여 올바른 선택으로나아갔다.

반면 관중들의 반응은 주목할 만한 대조를 보여준다. 처음 알카라스의 라켓 샷을 보고 환호했던 관중들은 자동적 또는 반자동적으로거기에 휘말려 들어가 멋진 플레이를 본 감탄과 흥분을 느끼는 감정전염의 상태였다. 셸러에 따르면 이러한 감정 전염은 타인의 체험에참여하려는 의식적 의도가 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진정한 동감이 아니다(Geum, 1999). 그러나 알카라스의 스포츠맨십을 목격한 후 보낸 박수는 그의 윤리적 행동을 의식적으로 평가하고 반응한 것으로, 진정한 동감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볼 수 있다(Park, 2023). 경기 후알카라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양심에 찔렸을 겁니다. 제가 잘못했거나 뭔가 규정을 어겼다면, 그걸 인정해야만 해요. 스스로에게도, 벤에게도, 모두에게도솔직해야 하죠. 서로를 존중하는 게 스포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Fendrich, 2025).”

이 발언은 알카라스가 단순한 뒤쫓아-느낌을 넘어 진정한 동감을실현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셸턴의 실재적 존재와 권리를 의식적으로존중했고, 그 결과 윤리적 행동으로 나아갔다. 이는 셸러가 말한 동감의 본질적 특징을 잘 드러낸다. 셸러의 관점에서 윤리적 판단은 행위의 외형이 아니라, 행위자가 타자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외부에서 행위만으로 완전히 구분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찰 가능한 형식이 아니라, 행위를 가능하게하는 가치 인식의 방식이다. 따라서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의미는 악수나 포옹과 같은 행위의 외형이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떠한 가치 인식에 근거하여 선택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사랑을 전제로 한 진정한 동감과 가치의 서열

셸러는 동감이 진정한 동감으로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타인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라고 본다. 동감에서 사랑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동감이 발생한다. 동감 없는 사랑은 존립할 수 있으나 사랑 없는 동감은 진정한 동감이 아닌 단순한 이해나 인식 그리고 뒤쫓아-느낌에 불과하다(Cho, 1999).

알카라스의 사례에서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가 셸턴에게 포인트를 양보한 것은 단순히 셸턴의 감정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셸턴과 공정한 경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등한 인격체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게 스포츠의 본질”이라는 그의 발언은 상대방에대한 근본적인 사랑의 태도를 보여준다. 만약 이러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의 행동은 단순한 규칙 준수나 형식적 예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것은 셸러가 말한 “보다 낮은 가치로부터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 일어나는 운동, 바로 이 운동이 사랑이다. 그 속에서 ‘선한’ 가치는 가장 근원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라는 통찰과 같은 맥락이다(Scheler, 1923/2013).

셸러의 가치론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대상들이 가치를 지니듯이, 가치를 느끼는 감정들마저도 또다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지향적 작용이나 기능은 상태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지향적인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 작용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경험되는 쾌락과 고통 같은 감정 상태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Geum, 2003b). 동감또한 뚜렷이 지향하는 대상을 지니는 가치적 질료인 지향적 작용이므로, 쾌락과 고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알카라스의 동감 행위는 이러한 지향적 작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승리라는 쾌락이나 패배의 고통이라는 결과적 상태보다, 셸턴과 함께 공정한 경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더 높은 가치를추구했다. 40-30에서 30-40으로 뒤처지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가윤리적 행동을 선택한 것은, 승부의 결과보다 경기 과정에서 실현되는공정성과 상호 존중이라는 더 높은 가치감정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셸러는 감정 영역의 가치 서열에서, 단순히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상태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자발적 작용이 더 높은 가치를지닌다고 본다. 그는 특히 자발적 작용인 사랑과 미움을, 가치 선호와배척, 가치 느낌, 기쁨과 슬픔, 동감과 반작용, 그리고 쾌락과 고통과같은 상태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놓았다(Cho, 1999). 이러한 가치 서열에서 알카라스의 행동은 단순한 규칙 준수나 형식적 예의를 넘어서는, 최상위의 자발적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랑의 감응과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완성

자비규칙(mercy rule)은 셸러가 말한 진정한 동감을 경기 규칙으로구체화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셸러에 따르면, 진정한 동감은단순히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과 수치심을 분리된 실재로서 존중하고, 그 권리와 인격을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의 태도로 배려하려는 윤리적 의지를 내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비규칙은 경기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를 넘어, 상대의 패배감과 굴욕을 함께 배려하려는 실천으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흔히 ‘콜드게임’이라 불리는 아마추어 야구의 조기 종료 규정(5회 10점 차 이상, 7회 7점 이상 시 경기 종료), 실내축구 경기에서 상대가 큰 점수 차로 앞서면 점수판을 더 이상 바꾸지 않는 규정, 미국 유소년 농구 리그에서의 10점 이상 점수 차 발생 시 전면 압박 수비를 금지하는 규정 등이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상대를 단순한패자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그의 패배감과 굴욕까지 배려하려는 윤리적 실천의 제도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비 규칙을 둘러싼 시각은 일관되지 않는다. 일부 선수와전문가들은 자비 규칙이 오히려 상대에게 더 큰 수치심과 굴욕감을안길 수 있다고 비판한다. 2020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페르난도타티스 주니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미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친 그는, “모든 순간 100% 플레이하는 것이 팬과 상대를 향한 진정한 존중”이라고 주장하며, 상대를 단순한 패자가 아니라동등한 경쟁자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Acquavella, 2020).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주장과 해석이 상대팀 선수나 관중들에게도 받아들여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팀 중 일부가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꼈을 가능성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자비규칙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자비규칙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쟁이 서로 다른 가치 위계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상호 존중의 기능으로서자비규칙을 둘러싼 논쟁은 스포츠맨십의 본질을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자비규칙은 타자의 존엄을 고려하는 정신적 가치에 근거한 실천인 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쟁은 승리를 향한 경쟁적 충동이라는 생명 가치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셸러의 관점에서 자비규칙과 경쟁 중심 수행은 서로 다른 가치 층위에서 형성된 긴장 관계에 있으며, 타자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정신적 가치가 더 높은 위계에서 우선된다. 셸러의 감정 윤리학은 자비규칙과 경쟁 중심 수행 사이의 긴장을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윤리적 성장의 계기로 이해한다. 따라서 스포츠맨십의 윤리적 기준은 생명 가치에 근거한 경쟁 수행이 아니라, 타자의 존엄을 감정적으로 인식하고 응답하는 정신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알카라스의 사례는 셸러의 통찰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그는 승리라는 쾌락이나 패배의 고통이라는 결과적 상태를 넘어서, 셸턴과 함께 공정한 경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 높은 가치를 지향했다. 경기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규정 위반을 스스로 인정한그의 태도는, 단순한 규칙 준수나 형식적 예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동감의 실천이었다. 이것은 셸러가 말한 “보다 낮은 가치로부터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 일어나는 운동”으로서의 사랑의 행위이며,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자발적 윤리의 표현이었다.

결국, 스포츠에서의 윤리적 실천은 자비규칙과 같은 전통적 가치,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경쟁의 가치 사이의 긴장 속에서만풍부하게 발현된다. 셸러의 관점은 이러한 긴장을 단순한 대립으로보지 않고, 오히려 인격의 성숙과 윤리적 감응을 실현하는 실천의 장으로 평가한다. 이는 곧 스포츠맨십이 단순한 이상적 규범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살아있는 윤리적 실천임을보여준다.

Notes

1)

셸러 관련 연구에서 공감, 동감에 대해 용어 혼란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공감’은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작용으로 해석하였고, ‘동감(Mitgefühl)’은 타인을 향해 느끼며 그의 고통·존엄·가치에 응답하려는 윤리적 감정으로 해석하였다.

CONFLICT OF INTEREST

논문 작성에 있어서 어떠한 조직으로부터 재정을 포함한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았으며 논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관계도 없음을밝힌다.

AUTHOR CONTRIBUTION

Conceptualization: Nayoung Kim, So-jung Kim, Formal analysis: Nayoung Kim, Methodology: Nayoung Kim, Writing -original draft: Nayoung Kim, Writing-review & editing: Nayoung Kim, So-j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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