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 고찰: 『도덕경』을 중심으로
Bing, Won-chul,*
Korean Journal of Sport Science, Vol.34, No.4, pp.728-736, 31 December 2023
https://doi.org/10.24985/kjss.2023.34.4.728
Abstract
PURPOSE
The ethical leadership of Taekwondo instructors plays a crucial role in enhancing the value of Taekwondo. Therefore, this study explores the elements of ethical leadership among Taekwondo instructors by drawing on the insights from Lao Tzu's Tao Te Ching.
METHODS
Through the Tao Te Ching, an oriental classic containing the ideas of Lao Tzu, we have extracted and discussed the elements of ethical leadership that Lao Tzu conveys to Taekwondo leaders in this era.
RESULTS
The ethical leadership of taekwondo leaders in the Tao Te Ching was presented as the virtues of inaction and humility as behavioral norms. Inaction as a code of conduct was discussed about a leader who practices inaction in a changing world through subjective thought rather than a meaningful Taekwondo leader who leads Taekwondo with an existing pattern and looks at ethics. A Taekwondo instructor must possess the virtue of humility. A Taekwondo instructor with humility must be glazed, soft, and humble as water.
CONCLUSIONS
In a Taekwondo culture that follows the Confucian ideology of extreme austerity, Lao Tzu's ethic of non-action and the virtue of humility can be like wearing an ill-fitting robe. However, standing on the edge, outside the frame of reference of the ideologies and values we have come to believe in and follow, and seeing the world as it is, not as it should be, according to the laws of nature, provides a new discourse for Taekwondo philosophy.
초록
[목적]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은 태권도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의 요소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결과]
『도덕경』에 담긴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행동규범으로서 무위(無爲)와 겸허의 덕(德)으로 제시하였다. 행동규범으로서 무위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윤리를 바라보는 유위적 태권도 지도자가 아닌, 변화하는 세계에서 주체적인 사유를 통해 무위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함을 논의하였다. 태권도 지도자는 겸허의 덕을 지녀야 한다. 겸허의 덕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물과 같이 유약하며 부드러우며, 검허하게 낮은 곳에 처해야 한다.
서론
잊을만하면 매스컴에 태권도 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보도된다. 대부분의 태권도 지도자들은 도장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비윤리적인 지도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무도 스포츠의 명예가 실추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존재한다. 태권도 지도자의 비윤리적 행위가 경쟁적 상업화, 승리지상주의, 개인적 일탈, 사회구조적 현실 등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태권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은 태권도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철학자들의 관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윤리철학자 Ciulla(2006)는 리더십은 도덕성을 확대한 것이라 하였다. 개인의 도덕성과는 달리 리더의 도덕성은 조직, 커뮤니티, 사회에 큰 파급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리더는 구성원에게 큰 해를 끼칠 수도 있고 큰 혜택을 줄 수도 있으며, 리더가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리더십은 특정한 유형의 인간관계이며 윤리는 다양한 관계에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윤리적 리더십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리더십 이론에서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Brown의 정의(Brown & Treviño, 2006)에 따르면, ‘윤리적 리더십은 지도자의 개인적 행동과 대인 관계를 통하여 적절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고, 양방향 의사소통, 강화, 의사 결정 등을 통하여 조직 구성원에게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사람들은 리더의 윤리적 그리고 비윤리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대 리더십 이론에서는 2000년대부터 리더의 윤리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Hassan et al., 2013; Sims & Brinkmann, 2003). 윤리적 리더십 연구의 기초를 닦은 많은 연구들에서(Treviño et al., 2000, 2003, Yi & Chang, 2010)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구성원들로부터 윤리적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도덕적 인간’(moral person)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관리자’(moral manager)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도덕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권도 분야에서도 2000년대 이후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문제와 관련한 연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갈등에 관한연구(Bing et al., 2009; Kim & Jeong, 2019), 태권도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경영윤리(Kwak & Im, 2010),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An et al., 2014) 등의 연구들이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태권도 지도자들이 경험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현상을 밝히고, 귀납적 방법으로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에 대한 요소들을 도출하였다. 특히 An et al.(2014)은 태권도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질적연구에서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의 덕목을 ‘존중’, ‘봉사’, ‘공정성과 정당성’, ‘정직성’, ‘공동이익 추구’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 지도자들의 생각에 따른 귀납적 방법이 아닌 도(道)와 덕(德)에 메타포(metaphor)를 우리에게 던져준 노자의 사상을 통해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도덕경』은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적절한 패러다임과 영향력, 지침, 방법을 제공하며(Kim, 2007), 리더가 갖추어할 마음가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노자(老子)는 무위(無爲)의 길을 역설하는 도가철학의 대표적 경전인 『도덕경』을 저술하였다. 『도덕경』을 통해 지도자의 리더십을 논의한 연구로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노자의 리더십 분석(Kang, 2007), 도덕경에 나타난 지도자의 수사학(Ahn, 2014), 노자의 리더십 분류(Park & Jung, 2009) 등이 있으며, 윤리적 리더십과 관련한 연구로 윤리적 리더십 관점에서의 노자사상 고찰(Wan & Hwang, 2013)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선행연구들은 노자의 사상을 통해 일반론적인 이상적 관점에서 지도자가 갖추어 할 덕성을 탐구하고 논의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노자의 대표적 사상인 거피취차(去彼取此)의 관점에서 저 멀리 있는 이상적인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현실의 세계에서 생생하게 활동하는 태권도 지도자의 리더십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태권도 지도자의 리더십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동양고전인 『도덕경』을 학문적, 이론적 틀로 사용하는 것은 동양 전통사상에 기반한 리더십의 내용, 사례 등을 통해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추론,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고전 『도덕경』의 윤리적 가치
공자와 노자의 사상적 대립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극렬한 혼돈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봉건제도의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제적 기틀인 정전(井田)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군사적으로는 각국의 전쟁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의 큰 변화에 따라 기존의 질서는 이미 모순되고 불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소인(小人)들이 군자(君子)를 넘어서려 하고 하는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인간, 특히 소인들의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사회적 제도 및 도덕적 행위 등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생겨나기 시작되었다. 이 시기 제자백가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황폐한 사회질서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해결책의 표출이었던 것이다(Cho, 2006).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의 축은 공자와 노자의 두 개의 사상이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공자는 인간이 신을 극복하고 이 세계의 주인으로 올라설 수 있는 조건을 인간내면에서 발견했다. 공자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인(仁)’을 인간 공통의 본질이라 하고, 그 공통의 본질이 천명론을 극복하는 길이라 하였다. 하지만 노자는 공자가 제시한 ‘인(仁)’의 사상은 인간의 내면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주관성을 벗어날 수 없고, 인간의 주관성은 결국에는 가치론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였다. 노자의 바램은 인간이 주관성의 옷을 벗어버리고 자연의 객관성으로 세계와 관계하는 것이었다. 즉 ‘가치’의 세계와 결별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사실’의 세계에서 인간질서와 관계의 근거를 발견하려 하였던 것이다(Choi, 2015).
성리학을 창시한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희(住熹)는 공자의 『논어』를 압축하여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하였다. 공자는 인간의 보편적 본질인 ‘인(仁)’을 키우고 확대할 수 있는 것을 ‘예(禮)’로 상정하고, ‘예(禮)’를 지키고 ‘예(禮)’ 앞에 순종할 것을 제안하였다. 공자는 『논어』 ‘안언(顔淵)편’에서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예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말고, 예에 맞지 않으면 듣지도 말고, 예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도 말며, 예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말라’고 하였다. Choi(2015)에 따르면, 공자는 ‘예(禮)’를 전체 사회가 모두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세웠다. 이 기준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자가 건설하려고 했던 ‘인간의 길’이었다. 하지만 노자는 공자가 제시한 ‘보편적 기준’을 부정하며, 자신만의 ‘인간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노자는 인간이 선의로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예(禮)’를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하는 한, 그것은 기준이 되어 인간을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권력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였다.
노자는 당시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인위적 가치를 쫓는 유위(有爲)에 있음을 진단하고, 인위적 가치가 아닌 자연적 가치인 무위(無爲)로서 이를 해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노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와 후왕들이 인위를 버리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것인가? 통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세상은 어떠한 원리에서 작동되는가? 어떠할 때 평화가 오는가? 등을 정리하여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으로 남겼다(Kim, 2019).
『도덕경』의 윤리적 가치
윤리적 리더십은 개인이나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도덕적 인간의 영향력이다(Ciulla, 2006). 윤리적 리더십과 관련된 요인들에는 지도자의 인격, 가치, 행동, 목표, 정직성, 파워 등이 포함된다. 특히 지도자의 인격은 윤리적 리더십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지도자의 인격은 지도자의 자질, 성격 그리고 핵심가치를 가리킨다(Northouse, 2014).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인간은 용기, 관용, 극기, 정직성, 사교성, 겸손, 공정성 그리고 정의의 덕목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Velasquez, 2018).
Northouse(2014)에 따르면,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세우는 여섯 가지의 핵심기중은 신뢰성, 존중, 책임감, 공평성, 배려, 시민의식이라 주장하였다. 이러한 서양사상에 제시하는 윤리적 리더십의 덕목들은 리더의 수양과 학습으로 길러야 하는 가치체계들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이상적 인간을 성인(聖人)이라 지칭한다. 노자는 성인의 인격을 무위(無爲), 과욕(寡欲), 유약(柔弱), 거하(居下), 부쟁(不爭), 주정(主靜)으로 보았고, 학습 원리로서 자각(自覺), 학불학(學不學),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을 제시하였다(Kim, 1998). 노자는 인위적으로 포장된 지혜와 총명, 인과 의, 효와 애를 반대한다. 인위적으로 교묘히 꾸미는 것이 유행하면, 곧 유형·무형의 제약과 기준이 만들어져, 인성의 자연스러움을 구속하게 된다고 노자는 보았다(Joh, 2009).
노자가 추구한 성인은 인위적 가치를 소거한 지도자이다.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고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유위(有爲)에 집착하며 자연적 질서를 따르지 않는 독단적인 행동방식에 있다고 노자는 보았다. 이러한 노자 사상의 윤리적 가치는 이미 주어져서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그래서 그것이 다시 우리를 억압하는 가치체계가 아닌 경계에 서서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하는 무위철학의 윤리적 가치는 바로 우주만물과 근원적 존재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리인 것이다.『도덕경』에서는 근원적 이상의 세계와 인간과 만물의 세계는 이원적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 즉 현실의 세계가 곧 근원적 이상의 세계로 나타나게 됨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근원적 존재의 자연적인 운동양식은 바로 인간이 마땅히 행위 해야 할 당위규범이 되는 것이다(Cho, 2006).
『도덕경』 15장 선비론은 노자의 반근원주의 윤리관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윤리관을 다룬다. Oh(2012)에 따르면, 노자는 선비(리더)의 윤리성을 양가성, 종용성, 그리고 중도성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양가성‘으로 옛날의 선비는 미묘하고 깊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억지로 표현한다면, 겨울에 강을 건너는 코끼리와 같이 둔중하고 개와 같이 신중하다. 둘째 ‘종용성’으로 선비는 통나무와 같이 돈후하고, 그 마음은 비어서 골짜기와 같으며, 그 마음은 웅덩이처럼 탁하다. 셋째 ‘중도성’으로 선비는 웅덩이의 탁함을 고요히 진정시켜 그것을 맑게 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는 능히 안정된 것을 오래 움직여 천천히 생겨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Kim, 2019).
노자사상을 비판적으로 해석한 연구들(Kim, 2011; Shin, 2011)에서는 노자의 사유는 비현실적이고 비문명적이며 허무주의와 반도덕주의로 점철되어 진다고 바라본다. 노자의 윤리학은 선악(善惡)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을 부정하는 윤리적 상대주의로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박탈한다는 비판적 견해가 존재한다.
노자는 인류 문명의 전통적인 가치들 즉 신, 진리, 이성, 윤리 등을 해체한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목적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와 이 세계에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사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 동안 우리의 주변에 있던 것, 가장자리에 있어 왔었던 것을 드러내 보이고, 기존의 가치와 윤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그 동안 인간의 목적으로 제시된 인위적 가치들이 언제나 우리의 삶을 억압해 왔다는 점을 직시하게 한다(Kim, 2011).
『도덕경』은 노자의 텍스트를 넘어 한국인의 문화적 텍스트이다. 이는 도덕경이 노자라 이름 되는 인물로부터 유래된, 중국문화 기원의 텍스트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의 고유성은 그 유래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화적 소재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Park, 2022). 노자의 윤리적 사상이 한국사회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는 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담긴 가치가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을 세우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도덕경』을 통해 본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 행동규범으로서 무위(無爲)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진단한 세상은 천하에 도가 사라지고(天下無道), 모든 예악이 무너져 버렸고(禮壞樂崩), 제후국 간에 이익의 이전 투구(何必曰利)를 벌이는 악(惡)의 시대였다. 이러한 악의 시대에 각 국의 제후들과 위정자들은 천하를 쟁취하고 자신들의 부를 위해 실용적 기술정치와 패도적 법술과 병법을 소중히 여겼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뒷받침해줄 이념과 방법을 세우는 학자들을 등용하여 실용적 유위(有爲) 윤리의 체계를 세웠다. 실용적 유위윤리란 행위의 결과가 유용성과 선(善)을 도출한다면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라는 관점이다. 침략과 전쟁도 백성의 삶을 위한 유용한 행위이며,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한 행위라는 이념이다. 이러한 실용적 유위윤리는 현대적 의미에서 공리주의적 성격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공자는 이러한 실용적 유위(有爲) 윤리와 패도정치를 비판하면서 인의(仁義)의 당위(當爲)윤리 주장하였다(Kang, 2013).
당위윤리란 행위의 결과(유용성, 실용성, 공리성)와 상관없이 단지 그 가치 규범이 옳다는 이유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관점이다. 현대적 의미로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로 해석될 수 있다. 공자에게서 인의(仁義)는 도덕실천의 근거이자 도덕의 제일원리이다. 인(仁)이 바탕이 되지 않는 예(禮)는 관습적이고, 상대주의적 도덕에 머무를 수 있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이성을 바탕으로 도덕적 격률인 정언 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것과 유사하다. 공자의 당위윤리는 보편적 이성(仁)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고 선악을 판단한다. 하지만 노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작위적 윤리를 거부하고, 무위(無爲)의 윤리를 주장한다.
노자에게 있어서 무위(無爲)는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자연의 원리이며, 이상적인 인간의 행동양식이다. 즉 노자의 무위(無爲)는 근원적 존재와 만물 그리고 인간에게 적용되는 실천원리이다. 무위는 만물의 생성과 완성을 만드는 자기실현이 원리가 되고, 인간의 근원적 생명, 즉 무(無)를 완전히 하도록 하고, 사회를 안정된 상태로 이끄는 자기실현의 실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근원적 존재의 자연적 운동양식은 바로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행위규범이 된다(Cho, 2006).
노자가 이야기하는 무위(無爲)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경』에 나타난 무위(無爲)의 의미를 밝혀 보아야 한다. 노자 말하는 무위(無爲)에서의 무(無)란 어떤 사물이 있었다가 없어지는 무(無)가 아니라 어떤 사물이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없는 듯한 것이 무(無)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위(爲)의 의미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지만 노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작(作)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행동이나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다(Kim, 2014). 노자는 『도덕경』 2장에서 유무상생(有無相生) 즉 유와 무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 하였다. 노자는 이 세계가 유와 무의 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도덕경』 37장 ‘도상무위 이무불이(道常無爲 而無不爲)’,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여기서 무위(無爲)란 앞서 설명한, 실용적 인위윤리나 당위윤리와 같은 어떤 기준이나 이념을 근거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위(有爲)적 행위는 특정한 신념, 가치관, 기준의 지배하에 있는 행동이다. 유위적 태도를 지닌 사람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자신의 가진 이념과 가치관, 기준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대로’ 보게 된다. 하지만 ‘무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은 어떤 이념과 기준의 지배를 받지 않기에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변화하는 세계의 진실과 접촉할 수 있게 되며, ‘무불위(無不爲)’ 즉 되지 않을 것이 없게 된다. 이어서 『도덕경』 38장에서 ‘시이대장부처기후, 불처기박(是以大丈夫處其厚, 不處其薄)’, ‘그러므로 대장부는 후덕함에 처하지 얄팍함에 거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후(厚)는 두텁다는 의미이다. 이 두터움은 내면의 두께이다. 내면의 힘, 내면의 동력, 주체성이다. 얄팍함, 경박함이란 실제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 이념만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가볍고 경박한 행동함을 뜻한다. 진리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 근거가 명확해지고, 확신에 찬 행동으로 눈에 핏발이 서고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반면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세계 자체에 몰두하는 사람은 이 세계의 변화와 관계를 인지하고 경계에서 서서 대립 면을 품는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무위(無爲)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대장부는 그 행동이 과감하지 않고 중후할 수밖에 없다(Choi, 2015).
세계 철학사는 유위(有爲)적 사유의 현실성의 진리와 당위적 사유의 이상성의 진리 간의 갈등과 알력으로 일관해왔다(Kim, 2004). 유위적 사유의 현실주의가 ‘이기적 자아의 본능’에 축을 두는 경제적, 과학적, 실용적 사유라면, 당위적 사유의 이상주의는 ‘보편적 자아의 이성’에 바탕을 두는 형이상학적 도덕적 사유이다. 유위적 사유는 도구적 이성으로 정당화되었고, 당위적 사유는 형이상학적 이성으로 일반화되었다. 이기적 자아의 도구적 이성주의인 실용적 사유는 경제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였고, 당위적 도덕철학과 이상주의는 소유적 경제 과학적 본능의 자발성을 억압함으로써 존재의 진리를 구성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당위적 사유 또한 인간중심의 보편적 소유를 겨냥하는 또 하나의 소유론의 철학이었을 뿐이었다(Kang, 2013). 하지만 노자는 인간세계의 작위적 도덕기준을 폐하는 대신 자연세계의 무위적 도덕기준을 따를 것을 강조한다.
노자에게서 작위적 마음과 의지적인 뜻은 버려야 할 사심이다. 『도덕경』 49장에, ‘성인무상심 이백성심 위심(聖人常無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무상심하기에, 백성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지 덕선(善者吾善之, 不善者亦善之 德善)’, 착한 자를 내가 착하다고 하고, 착하지 못한 자를 나는 또한 착하다고 하니, 이것이 덕을 잘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노자에게는 고정된 마음과 차별된 마음이 없다. 노자는 고정된 이념과 기준으로 사람을 분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태권도 지도자는 세상에서 이미 정해진 이념적 작위적 기준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차별적 행위를 삼가하고, 무위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인 덕성으로 행해야 한다. 보편적인 예(禮)의 기준에 따라 예의(禮義)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강압적 행동을 하는 행위, 세상에서 따르는 성취적 기준에 따라 품새, 겨루기, 시범 기술의 성과에 못 미치는 선수를 구분하고 강압적이고 폭력적 행위를 하는 행위 등 이러한 유위적 기준에 따른 행위는 태권도 지도자의 비윤리적 리더십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 57장에서는 ‘고성인운(故聖人云)’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아무위이민자화(我無爲而民自化)’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이 저절로 화합하고, ‘아호정이민자정(我好靜而民自正)’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들이 저절로 올바르게 되고, ‘아무사이민자부(我無事而民自富)’ 내가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들이 저절로 부유해지고, ‘아무욕이민자박(我無欲而民自樸)’ 내가 탐욕을 부리지 않으니 백성들이 저절로 소박해진다고 하였다. 태권도 지도자가 무위하게 되면 선수, 지도자, 학부모 모두 화합하게 되고, 선수와 수련생은 교화되며, 태권도라는 세계는 번성하고 안정화된다는 것이다.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인 무위(無爲)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무사유가 아니다. 태권도 지도자의 무위란 세계와 관계할 때 기존의 견고한 틀과 방식, 기준 등을 덜어내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이 고유하게 생산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세상과 직접 관계하는 것이다.
스포츠계의 다양한 사건들로 인하여 윤리적 규정들이 갈수록 촘촘하고 세밀하게 세워지고 있지만 비윤리적 행위들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윤리적 규정이 긍정적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윤리적 사회는 어떠한 이념이나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로 살겠다는 독립적인 자존감에서 실현되는 것이다(Choi, 2015).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윤리를 바라보는 유위적 태권도 지도자가 아닌, 변화하는 세계에서 주체적인 사유로 무위하는 윤리의 실천가를 노자는 바라고 있다.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 겸허의 덕(德)
공자는 『논어』에서 ‘덕(德)’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이중성공지(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덕으로 정치를 행하라, 그러면 북극성같이 비유되어, 그 자리에 머물 뿐인데도, 뭇별들의 무리가 함께(共)하게 된다. 즉, 지도자가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를 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는 뜻이다. 이렇듯 공자의 덕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나를 닦는 과정과 노력으로 세계를 감화시키는 것이 인간 도덕성의 발현인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인위적인 덕이 아닌 자연적 무위를 따르는 겸허의 덕을 강조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겸허(謙虛)의 덕과 겸손(謙遜)의 덕은 구별된다. 겸손의 덕은 유위윤리나 당위윤리적 관점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의 소산이지만, 겸허의 덕은 존재론적으로 내면에서 무아의 경지로 비운 마음이 갖는 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겸허의 덕은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 없다. 지성의 분별력과 동물적 경향성을 내려놓고 만물과 만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그들에게 존재의 터전을 제공해 주는 자비나 보시의 의미를 지닌다(Kang, 2013).
노자는 인간내면의 본성으로서 이미 갖추어져 있는 덕을 상덕(上德)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덕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만물에 내재된 자연성이다(Kang, 2013). 『도덕경』 51장에 ‘도생지 덕축지(道生之 德畜之), 물형지 기성지(物形之 器成之), 시이만물존도이귀덕(是以萬物尊道而貴德), 도지존 덕지귀(道之尊 德之貴), 부막지명이상자연(夫莫之命而常自然),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 만물은 비록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환경은 그것들을 성장시킨다. 그래서 만물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긴다. 도는 높고 덕은 고귀하지만 만물에 군림하지 않고 자연에 따라 저절로 되어 가게 놔둔다. 노자는 상덕은 무위하여 작위가 없지만, 하덕은 유위하여 작위가 있다고 한다. 상덕은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실현되지만, 하덕은 인위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의 수고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도덕경』 66장에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하는 ‘겸허(謙虛)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백성 위에 있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말을 겸허하게 하고, 백성들 앞에 서고 싶으면 반드시 자신을 뒤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도덕경』 24장에 ‘자견자불명 자시자불창 자아자무공(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 自伐者無公)’,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깨우치지 못한 자이고, 자신의 견해만을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인정받을 수 없고, 스스로를 과시하는 자는 공이 없다고 한다. 노자는 스스로를 과시하는 행위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성인의 자세를 22장에서도 밝히고 있다.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있어서 어떠한 이념과 인습적 가치에 사로잡혀서 생각이 단단해져 있으면, 그 생각에 의해 자신을 과시하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어떠한 인습적 가치나 이념에 고착되지 않는, 즉 객관적 가치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는 단단함을 버리고, 어떠한 상태에도 고착되지 않은 유연함을 가질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곧 겸허함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 17장에는 현명한 지도자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태상부지유지(太上不知有之)’,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이고, ‘기차친이예지(其次親而譽之)’, 백성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가 그다음 지도자이며, ‘기차외지(其次畏之)’,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그다음 지도자이고, ‘기차모지(其次侮之)’,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비웃는 지도자이다. 이어서 노자는 훌륭한 지도자의 처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혜기귀언(悠兮其貴言)’,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삼가고 아낀다. ‘공성사수(功成事遂)’, 지도자가 할 일을 다하여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면,‘백성개위아자연(百姓皆謂我自然)’, 백성들은 말하기를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다〉라고 한다. 지도자가 자신의 업적과 치적을 알리기 위해 작위(作爲)적인 행위를 하게 되면,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당하거나, 두려운 존재가 되거나, 어쩌면 칭찬받는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노자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는 작위적 행위가 아닌 자신의 할 일을 모두다 하지만 말을 삼가고 백성들에게 자연적인 저절로 이루어짐을 알게 하는 겸허의 덕을 지닌 지도자라 이야기한다. 실적주의의 영향으로 태권도 지도자들은 칭찬받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선수나 수련생을 인위적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지도자가 두려운 존재가 되거나 비웃음을 당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태권도 지도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 성과를 드러내어 자신의 치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선수나 수련생 스스로가 목표를 성취하여 그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고, 그 공을 돌리는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도덕경』 68장에는 장수의 겸허의 덕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위사지불무(善爲士者不武), 선전자불노(善戰者不怒), 선승적자불여(善勝敵者不與), 선용인자위지하(善用人者爲之下)’, 뛰어난 장수는 무력을 쓰지 않으며, 싸움에 능한 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고,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겸허하다. 뛰어난 장수는 무력을 쓰지 않고도 이길 수 있고, 전쟁에 나가서도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며, 부하들과 적장에게 조차도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 태권도 지도자의 폭력적인 비윤리적 행위들이 태권도의 다양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모습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선수나 수련생들에게 노여움과 폭력적 행위를 하는 강압적인 행동은 부쟁(不爭)의 덕이 아닌 분쟁(分爭)의 씨앗이 된다.
따라서 태권도 지도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나 상황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으며, 화를 드러내지 않고, 무력을 쓰지 않는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뛰어난 장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경』 42장에서 노자는 자신의 가르침의 근본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강량자 부득기사(强梁者 不得其死), 오장이위교부(吾將以爲敎父)’, 강경하고 힘으로 득세하는 자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이치를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는다. 즉 노자가 근본으로 삼는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은 유약하고 부드러우며, 무욕(無慾)과 무신(無身)의 겸허의 덕을 지닌 지도자인 것이다.
태권도 지도자의 역할
이 절에서는 무위(無爲)와 겸허(謙虛)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노자의 무위와 겸허에 대한 사유가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의 행동 규범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충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첫째, 무위(無爲)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단련중심의 태권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현재 태권도 지도현장에는 인위적으로 꾸며진 총명과 지혜, 인과의, 효도와 인성교육이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노자는 교묘하게 꾸미는 것이 유행하면, 곧 유·무형의 제약이 만들어져, 인성의 자연스러움을 구속하게된다고 보았다(Joh, 2009).
현재 태권도 교육의 철학적 사유는 건전한 사회인을 목표로 ‘이성’과 ‘예’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학교성적이 우수한 것을 더 바람직하게 여기고, 사회의 정해진 보편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적 흐름 속에서 많은 태권도장에서는 예절학교 체험, 효에 대한 영상 시청, 큰 소리로 인사하기, 토마토 기르기 등 인위적이고 상업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이 만연해 있으며, 태권도 교육에 태권도가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이 팽배하다(Bing, 2022).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상업화된 태권도장에서는 재미가 강조된 스포츠활동과 보여주기식 인성교육, 홍보적 효과를 위한 인성교육이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Kim, 2013). 하지만 노자는 겉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장식과 같은 인위적인 교육으로는 인간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Kim, 2004). 따라서 무위(無爲)를 겸비한 태권도 지도자는 태권도 수련의 본질인 태권도를 통해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힘의 강약, 속도의 완급, 중심이동 등 품새 수련을 통해 수련생이 자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배우고, 고난도 발차기의 수많은 실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해 내는 성취감을 느끼며, 거인 같은 상대에 주눅들지 않고 겨뤄보는 용기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무위(無爲)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의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태권도 교육에 태권도가 없다는 비판적 현실 속에서 태권도 교육의 가치가 태권도 자체에 있음을 주지하고 실천하는 무위(無爲)적 태권도 지도자들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둘째, 무위(無爲)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하나의 기준으로 선수와 수련생을 구분하고 배재하고 억압하는 교육을 경계해야 한다.
엘리트 선수를 지도하는 태권도 지도자들과 도장에서 수련생을 지도하는 지도자들 모두 자신들 만의 교육철학과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실용적 유위윤리 관점에서 선수와 수련생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다. 하지만 일부 지도자들은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은 행위를 한 선수와 수련생을 구분하고 배재하며 억압한다. 지도자가 확신에 찬 신념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면 폭력적 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도덕경』 12장에는 ‘오색영인맹목(五色令人目盲)’,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무한대의 색깔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색을 표현하고 수용할 때 백·흑·청·적·황의 다섯 가지 기준색을 주축으로 한다. 무한대로 펼쳐진 색깔 가운데 다섯 가지만을 고르고, 그 조합으로 전체 색깔을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무한대의 색깔 가운데 다섯 개만을 구분해서 쓰는 것이니,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이다(Choi, 2015).
태권도 지도자가 하나의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수와 수련생을 판단하고, 전체 선수와 수련생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는 것은 태권도 교육 환경을 경직되게 하고, 지도자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지도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지도방법과 기술의 기준을 정해 놓고 선수와 수련생들을 주구장창 그 방법대로 따라 오게 한다면, 수련생들과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위(無爲)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변화하는 세계를 마주하고, 경계에 서서 태권도 현장을 바라봄으로 광신(狂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도자의 광신은 대게 협소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신의 협소한 믿음체계로 선수와 수련생을 실력에 따라 구분하여 억압하거나, 사회적·경제적 환경에 따라 구별하여 차별하는 인위적 행위를 소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태권도 지도자들은 상대방 누구에게도 열려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고정된 마음과 차별된 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겸허(謙虛)의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스스로를 낮추고 유약(柔弱)한 내면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태권도 교육현장은 성과주의, 실적주의, 승리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세계이다. 수련생이 많은 도장이 최고의 도장이고, 우수한 성적을 내는 선수를 배출한 지도자가 최고의 지도자로 보여지는 사회이다. 이러한 성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자만해지기 쉬워진다. 거만한 지도자는 다른 이들의 공격을 받아 해를 받기 쉽다. 노자는 바다가 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이며, 성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태권도 지도자는 도장, 협회, 학교, 선수와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항상 낮은 곳에 처하는 겸허의 덕을 지녀야 할 것이다.
‘태상 부지유지(太上 不知有之)’, 가장 훌룡한 지도자는 지도자가 있다는 것만 안다. 통치의 최고 수준은 ‘태상(太上)이다. 지도자가 있는 줄은 알지만 백성들은 지배당하는 느낌과 어떤 부담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치론적 평가나 감정적인 느낌이 만들어지지 않고, 형식으로만 존재한다(Choi, 2015). 태권도 지도자가 자신의 마음대로 선수와 수련생, 학부모를 움직이려 하지 않고, 그들의 움직임에 자신을 맞추게 되면, 태상(太上)의 단계에 다다를 수 있다.
엘리트 태권도 현장은 성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지도자들의 전쟁터이다. 이 전쟁터에서 덕이 없는 장수(지도자)는 복수의 칼날로 무장하고 적진으로 돌진한다. 하지만 겸허의 덕을 지닌 태권도 지도자는 자비롭고 겸허한 용기를 지닌다. 물처럼 유약(柔弱)한 것이 견강(堅剛)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가르침이 태권도 지도자들에게 필요하다.
결론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태권도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윤리적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교적 이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따르는 태권도 문화 안에서 노자가 제시하는 무위(無爲) 윤리와 겸허의 덕(德)은 어찌 보면 맞지 않은 도복을 입은 것과 같을 수 있다. 나를 단련하고 단련하여 예(禮) 앞에 순종하는 것을 태권도 철학으로 여겨왔던 기존의 가치관으로 무위와 겸허를 바라보면 노자의 사상은 허무주의나 반도덕주의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 왔고 따라왔던 이념과 가치의 기준을 벗어나 경계에 서서 봐야 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닌 보여지는 대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태권도 철학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 준다.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 노자는 당시 사회적 혼란은 하나의 이념에 관념화되어 보편적 기준에 따라 행위 하는 것에 있음을 지적하며, 온갖 인위적인 기준을 넘어서 모든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도(道), 즉 무(無)를 따를 것을 설파하였다. 그러므로 노자의 사상에서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천의(天意)나 천명(天命) 그리고 예(禮)와 인(仁)의 기존질서와 관념은 부정된다. 따라서 노자는 실용적 유위윤리와 당위윤리의 모든 작위적 윤리를 거부하고 무위(無爲)의 윤리를 주장하였다.
태권도 지도자가 선수와 수련생을 지도할 때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꾸짖어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 그때에 지도자의 과도한 지적과 꾸짖음은 폭력적 행위로 이어지곤 한다. 노자는 이러한 경우에 무위의 방법을 제시한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서 인습적인 가치로 판단하거나 지도자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 무위의 첫걸음이다. 『도덕경』 57장에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저절로 올바르게 된다라는 글은 지도자의 무위적 행위규범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따라서 학생들의 행위를 기존의 가치관으로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닌, 보이는 그 자체로 봄으로서 학생들을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무위윤리를 실천하는 태권도 지도자의 윤리적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윤리적 리더십으로 겸허의 덕을 강조한다. 『도덕경』 67장에서 노자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 감히 세상 사람들 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교만함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적으로 평가받고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태권도 지도자들에게 드러냄과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서 나가려 하는 마음은 당연한 욕망이다. 하지만 태권도 지도자의 비윤리적 행위는 실적주의와 승리지상주의에 따라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야 하고 남보다 앞서야 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해 왔다. 이러한 실적주의와 승리지상주의 상황에서 학생들을 향한 노여움과 폭력적 행위가 그동안 이어져 왔던 것이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선(善)은 착함을 뜻하는 것이 아닌 ‘탁월함’, 즉 아레테(arete)를 뜻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탁월함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의 존재론적 속성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낮은 곳에 처한다. 따라서 최고로 탁월한 태권도 지도자는 물과 같이 부드러우며,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지 않고, 겸허하게 자신을 낮은 곳에 두는 윤리적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