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핑 정책의 공정성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막스 셸러의 인격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A Critical Examination of Fairness Discourse in Anti-Doping Policies: Focusing on Max Scheler’s Personalism
Kim, Na-young1; Kim, So-jung2*
Korean Journal of Sport Science, Vol.37, No.2, pp.288-296
https://doi.org/10.24985/kjss.2026.37.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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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URPOSE This study critically reexamines the fairness discourse underlying antidoping policies through Max Scheler’s philosophy of personalism. It aims to reveal how regulatory fairness, grounded in strict liability, neglects the moral and human dimensions of sport. METHODS The study employs a philosophical-ethical analysis using Scheler’s concepts of personhood, community, and value hierarchy. The Systems-Theoretic Accident Model and Processes (STAMP) is incorporated to examine systemic reform of antidoping governance beyond individual blame and control. RESULTS The findings indicate that the prevailing fairness paradigm objectifies athletes by prioritizing outcomes over ethical autonomy, thereby undermining human dignity. In contrast, Scheler’s framework conceptualizes the sports community as a “community of persons” in which justice and fairness are realized through moral autonomy and mutual responsibility. CONCLUSIONS The study argues for reconstructing antidoping systems as solidarity-based frameworks that emphasize collective moral responsibility and institutional learning. Integrating Scheler’s ethics with the STAMP model, it proposes a cyclical process—detection, analysis, improvement, and reapplication—that redefines fairness as an ethical relation grounded in human dignity rather than control mechanisms.
초록
[목적] 이 연구의 목적은 공정성 담론을 근거로 정당화되어 온 반도핑 정책을 막스 셸러의 인격주의 철학에 기반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반도핑 규범의 윤리적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 [방법] 막스 셸러의 인격 개념과 공동체 원리를 바탕으로 분석하였다. [결과] 스포츠 공동체가 단순한 규칙 준수를 넘어 정의, 공정성, 존중과 같은 고차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도덕적 자율성과 상호 책임에 기반한 ‘인격의 공동체’로 기능하는 사회적·윤리적 장(場)임을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셸러의 가치 위계론에 기반하여, 반도핑 정책의 핵심 원리인 공정성 개념을 선수의 자율성과 가치 실현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엄격책임원칙은 규범적 이상을 명분으로 하면서도 스포츠의 윤리적 토대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선수의 인격을 결과 중심의 판단 구조 속에서 객체화하고, 그로 인해 존엄성을 침해하는 역설적 구조로 작동함을 규명하였다. 끝으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셸러의 도덕적 감응과 연대책임의 원리를 STAMP(Systems-Theoretic Accident Model and Processes) 모델의 구조적 관점과 결합하여, 반도핑 규범이 개인의 책임과 처벌 중심의 통제 체계에서 벗어나야 함을 제시하였다. [결론] 이를 통해 도핑 적발 → 원인 분석 → 제도 개선 → 재적용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통해,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책임과 제도적 학습이 지속적으로 환류되는 연대적 시스템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서론
2022년 4월, 영국 테니스 선수 타라 무어(Tara Moore)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WTA 250 대회(Copa Colsanitas)에서 채취한 도핑 샘플에서 난드롤론(nandrolone)1) 및 볼데논(boldenone)2) 성분이 검출되었다. 그는 고의 복용이 아니라 남미 지역에서 섭취한 오염된 고기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주장하며, 현지 식품안전기관 자료와 전문가 의견 등을 근거로 무고함을 입증하고자 했다. 독립심판부(Independent Tribunal)는 이러한 정황을 인정해 무과실 판정을 내렸으나, 국제테니스무결성기구(International Tennis Integrity Agency, ITIA)가 항소했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이를 받아들였다. 2025년 7월 CAS는 무어에게 ‘엄격책임원칙(strict liability principle)’을 적용하여 4년 출전 정지 처분을 확정하였다(ITIA, 2025.07.15.; CAS, 2025.07.15.).
그러나 브라질 테니스 선수 니콜라스 자넬라토(Nicolas Zanellato)의 사례는 대조적인 결론을 보였다. 그는 2024년 6월 콜롬비아 이바게 대회에서 채취된 시료에서 볼데논 양성 반응을 보였으나, 현지 고기 오염이 원인임을 입증하여 2025년 2월 ITIA로부터 무과실 판정을 받고 복귀가 허용되었다(ITIA, 2025.02.18.). 이 결정은 최근 도핑 규제에서 식품 오염 등 비의도적 요인에 대한 합리적 고려가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어 사건과 자넬라토 사건 모두 콜롬비아에서 가축 성장 촉진제로 볼데논이 사용된다는 점을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는 두 선수 모두 검출된 물질이 외부 오염에 의한 비의도적 노출일 가능성이 있다는 동일한 논리를 취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두 사건의 판정 결과는 크게 달랐다. 타라 무어 사건에서는 구체적인 검출 수치가 공개되지 않은 채, 판정기관이 오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제재를 확정하였다. 반면 니콜라스 자넬라토 사건에서는 동일한 지역적, 환경적 맥락을 고려하여 무과실 판정이 내려졌다. 이러한 대비는 ‘엄격책임원칙’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즉, 선수의 고의성 여부나 과학적 검증 가능성과 무관하게 ‘검출되면 곧 위반’으로 간주되는 제도적 절차가 형식적 정의에 그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 결과 도핑 규제는 선수의 방어권과 인격적 존엄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 채, 법적 형식주의로 귀결되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도핑은 비윤리적 행위이다”라는 진단은 스포츠윤리 담론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어 왔다(Kim, 2002; Kim, 1988; Nam, 1988; Song, 2006). 도핑이 비난받아야 하는 구체적 근거로는 공정성 침해, 건강 훼손, 인간 존엄성의 훼손, 직업윤리 위반 등이 제시되며(Cashmore, 2000; Hyland, 1990; Park & Kim, 2005; Simon, 1985; Thomas, 1983), 이러한 비판 속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반도핑 규정을 강화하고 감시 체계를 엄격하게 정비해왔다.
“It is each Athlete’s personal duty to ensure that no Prohibited Substance enters his or her body. Athletes are responsible for any Prohibited Substance or its Metabolites or Markers found to be present in their Samples.”(World Anti-Doping Code [WADA], 2021, Art. 2.1.1)
현행 반도핑 규범의 핵심인 ‘엄격책임원칙’은 위에 제시된 바와 같이 선수의 고의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금지약물 검출 결과만으로 책임을 귀속시키되, 명확한 판단 기준과 투명한 절차 없이 기관의 재량적 해석에 따라 동일한 조건에서도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원칙은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현실적 조치로 정당화되지만, 선수의 인권과 적법절차 보장 측면에서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다.
실제로 선수들은 도핑 혐의를 벗기 위해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며, 이로 인해 자격정지와 같은 심각한 제재에 직면한다(Kwon, 2023). 이러한 경험은 선수들로 하여금 강화된 규제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불합리한 절차로 인해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을 갖게 만든다(Overbye, 2016). 이는 현행 반도핑 체계가 ‘규칙을 따랐는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적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의 실질적 윤리 맥락이나 현실적 상황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규범 적용은 보편적 도덕 법칙 준수를 중심으로 한 형식주의적 접근에 머무르고 있다(Schönecker & Schmidt, 2018). 이러한 접근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과 가치의 다양성을 경시하며, 선수들을 윤리적 성찰의 주체가 아닌 규범 적용의 객체로 전락시킨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형식주의적 윤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의 인격주의적 관점을 통해 도핑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셸러의 인격 개념은 ‘의식의 작용론’에 기반한다. 그는 인격을 ‘사랑하는 것, 기억하는 것, 사고하는 것, 의욕하는 것, 지각하는 것, 판단하는 것, 감지하는 것’ 등 다양한 의식 작용을, 전체로 통일한 살아 있는 정신적 중심으로 정의하였다(Geum, 2003). 이처럼 인격은 단순히 규칙을 준수하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가치 질서를 직관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능동적 주체로 이해된다. 현행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의 도덕적 책임을 규칙 위반 여부만으로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선수의 윤리적 맥락과 가치판단 구조를 간과하는 것이다. 이는 인격을 단순한 규제 대상으로 환원시키며, 선수들로 하여금 도핑 통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셸러의 관점에서 이는 곧 선수의 인격적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셸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격성을 비판하면서(Kim, 2025), 총체인격의 ‘연대책임’을 통한 새로운 윤리적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연대책임의 원리는 스포츠 현장에서 선수 개인이 공정성 가치에 책임을 지는 동시에, 스포츠 공동체 역시 선수의 인격적 존엄성을 보호할 의무를 함께 지닌다는 상호적 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도핑 문제의 해결은 엄격책임원칙에 의한 일방적 처벌이 아니라, 선수와 공동체 간의 상호 신뢰와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윤리적 접근이 요구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셸러의 인격주의 철학에 기반하여 공정성 담론을 근거로 정당화된 반도핑 정책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반도핑 규범의 윤리적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막스 셸러의 인격 개념과 공동체 원리를 바탕으로, 스포츠 공동체가 단순한 규칙 준수를 넘어 정의, 공정성, 존중과 같은 고차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도덕적 자율성과 상호 책임에 기반한 ‘인격의 공동체’로 기능하는 사회적·윤리적 장(場)임을 고찰한다. 다음으로 셸러의 가치 위계론에 기반하여, 반도핑 정책의 핵심 원리인 공정성 개념을 선수의 자율성과 가치 실현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엄격책임원칙은 규범적 이상을 명분으로 하면서도 스포츠의 윤리적 토대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선수의 인격을 결과 중심의 판단 구조 속에서 객체화하고, 그로 인해 존엄성을 침해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끝으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셸러의 연대책임 원리와 STAMP(Systems-Theoretic Accident Model and Processes) 모델을 결합하여, 반도핑 규범이 개인의 책임과 처벌 중심의 통제 체계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책임과 제도적 학습이 순환하는 연대적 시스템으로 재구성되어야 함을 제시하고자 한다.
결국 이는 이러한 논의는 처벌과 통제 중심의 형식주의적 접근을 넘어, 감응(Mitfühlen)과 연대책임에 기초한 실질적 가치윤리로의 전환을 통해 스포츠가 진정한 ‘인격의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도로 사료된다.
‘인격의 공동체’관점에서 본 스포츠와 반도핑 규범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이며, 셸러는 이러한 존재 방식을 ‘공동체(Gemeinschaft)’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생물학적, 사회적 이해관계로 연결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정신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공동체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는 ‘연대성의 원리(Prinzip der Solidarität)’로, 각 인격이 자기 자신에게 도덕적 책임을 지는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동 책임을 지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셸러는 이러한 상호 응답 관계를 사회적 결합의 가장 높은 단계로 보았으며, 이를 ‘인격의 공동체(Gemeinschaft von Personen)’라 명명하였다. 공동체는 단순한 생존의 결합체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고 인격적 책임을 나누는 윤리적·정신적 결합체로서, 그 안에서 인간은 고차적 가치를 체험하고 실현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곳이다(Lee, 2010).
이러한 셸러의 관점에서 보면, 스포츠는 단순히 규칙을 준수하고 승패를 가르는 기술적 행위의 장이 아니다. 스포츠라는 공동체는 인간이 도덕적 감정과 가치를 실천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배우는 사회적·윤리적 공간이다. 스포츠 현장에는 승리와 패배, 건강과 탁월성, 공정성과 존중과 같은 가치들이 단순한 경기 결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가치들은 인격적 주체들이 서로에게 응답하고, 그 응답 과정 안에서 의미를 생성하고 완성된다. 따라서 스포츠는 개인적 성취의 장(場)이자 동시에 공동체적 도덕 감정을 매개로 한 인격적 실현의 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도핑 문제와 같은 윤리적 갈등 상황에서, 선수뿐 아니라 규범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모든 주체들(감독자, 심판, 단체, WADA 등) 역시 이러한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하고, 연대적 책임을 함께 지는 구성원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핑 규제는 단순히 규범의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적 절차로 전락하며, 공동체적 신뢰와 윤리적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셸러에게 인격은 단순한 심리적 주체가 아니라, 가치 질서를 직관하고 그에 응답함으로써 스스로를 형성하는 정신적 중심이다. 그는 인격주의 가치윤리학을 통해 모든 가치 가운데 최고의 것은 ‘인격가치’임을 주장하며, “모든 가치는 무한한 인격적 정신의 가치와 그것이 열어 보이는 가치 세계에 정초되어 있다.”고 강조하였다(Lee, 2011). 셸러는 인격가치가 모든 가치의 토대가 되는 최고의 가치이며, 이러한 가치 질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격적 정신만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격은 가치의 서열을 인식하고 정의, 진리, 존중과 같은 고차적 가치에 자율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이 자율적 응답성이 도덕적 판단과 책임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나 현실의 스포츠 규범은 이러한 인격 중심의 가치 실현이 제도적으로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2020)가 채택한 ‘엄격책임원칙’은 그 대표적 사례로, 셸러의 윤리적 기초와 충돌한다. 이 원칙은 도핑 위반이 발생했을 경우 선수의 의도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검출 결과’ 그 자체만으로 위반이 성립되는 구조를 지닌다(Kwon, 2023). 즉, 도핑 방지 규범은 ‘결과’만으로 책임을 귀속시키는 형식적 정의의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도덕적 동기, 가치 판단, 의식적 고뇌 등 인격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선수는 단순히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수 없다. 그는 성분표 확인, 금지목록 대조, 제품 출처 검증, 전문가 자문, 인터넷 검색 등 일상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확인 의무를 부담해야 하며(Korea Anti-Doping Agency, 2021), 위반이 발생하면 스스로 고의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도핑 규정은 또한 ‘특정약물’과 ‘비특정약물’로 구분되어, 입증책임의 방향과 자격정지 기간의 감경 여부가 다르게 적용된다. 예컨대 비특정약물의 경우, 선수가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4년의 자격정지가 2년으로 감경될 수 있고, 특정약물의 경우에는 도핑방지기구가 고의를 입증하지 못할 때 동일한 감경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규범은 명목상으로는 공정성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선수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비대칭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셸러가 말한 ‘인격적 정신의 자율적 응답성’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그에게 인격은 외부의 규칙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자율적으로 직관하고 실천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WADA의 엄격책임원칙은 내면의 의도나 윤리적 성찰을 배제하고, 단지 결과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한다. 그 결과, 선수의 인격은 규칙의 대상이자 처벌의 객체로 환원되고, 도덕적 자율성과 신뢰의 정신은 약화된다. 이는 스포츠를 고차적 가치 실현의 장이 아닌, 규범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관리적 시스템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선수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주의의무는 일상 전체를 감시의 영역으로 만들어, 인격적 주체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한다. 셸러가 말하는 ‘인격의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이 고차적 가치에 자율적으로 응답하고, 그 응답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관계적 구조이다.
그러나 엄격책임원칙은 이러한 자율적 응답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공동체적 연대보다는 결과 중심의 처벌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스포츠의 윤리적 본질과 모순을 이룬다. 스포츠 공동체는 원래 도덕적 감정과 상호 신뢰를 통해 유지되는 윤리적 실체이지만, 엄격책임원칙은 인간을 규칙의 기계적 적용 대상, 즉 ‘도덕적 주체’가 아닌 ‘규율의 객체’로 전락시킨다. 셸러의 인격론에서 핵심적인 통찰은 인격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대상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격은 인간 안에서 정신이 드러나는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실존 형식이며, 정신적 작용 너머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정신 활동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현상학적 실재이다(Lee, 2010). 이 관점에서 보면, 도핑 규범이 선수를 단지 ‘규제의 객체’로 취급하는 행위는 인격의 비대상성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엄격책임원칙은 인간을 자기반성적 주체가 아니라 ‘규범의 관찰 대상’이자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며, 인격의 내적 존엄을 외적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결과적으로 엄격책임원칙 제도는 도덕적 인간을 규범의 매개체로 도구화하며, 이는 곧 인격의 객체화(objectification)라는 구조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인격의 객체화는 실제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Jarrion Lawson 사건(CAS, 2020.03.09.)과 Blake Leeper 사건(CAS, 2018.01.25.)에서 선수들은 오염된 음식 섭취나 환경적 요인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식당 영수증, 진술서, 전문가 감정서, 거짓말 탐지기 결과 등 방대한 자료를 제출해야 했고, 사생활 전반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선수의 인격과 존엄이 제도적 통제하에 노출되는 구조적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WADA의 엄격책임원칙은 선수를 가치를 인식하고 선택하는 도덕적 주체가 아닌, 결과에 의해 규정되는 피규제 객체로 전락시킨다. 이 원칙은 행위의 맥락, 의도, 윤리적 동기, 실존적 고뇌를 고려하지 않으며, 인격의 존엄성과 가치 실현의 능동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따라서 도핑 방지 규범이 진정한 윤리적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칙 준수의 차원을 넘어 규범이 전제하는 ‘인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도핑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위반의 억제’가 아니라 ‘인격적 가치의 회복’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스포츠는 윤리적 문화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엄격책임원칙 속 공정성과 존엄성의 대립
‘공정성 이론(fairness argument)’은 스포츠에서 약물복용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논의 중 하나이다(Park, 2007).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로 간주되어 스포츠 경쟁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Brown, 1977). 만약 약물로 인해 선수에게 결정적인 이점을 주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스포츠 경쟁의 근본적 전제인 공정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공정성 논리에 근거하여, 현행 도핑방지 규범은 선수들에게 도핑을 금지하고 방지할 주의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는 엄격책임원칙을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Kwon, 2023).
세계도핑방지규약과 스포츠중재재판소(CAS) 결정례를 통해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마련되었는데, 약품 라벨 및 성분 확인, 금지목록 대조, 인터넷 검색, 출처 신뢰성 점검, 전문가 상담 등 다양한 객관적 절차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Korea Anti-Doping Agency, 2021). 엄격책임원칙은 도핑 위반이 발생했을 경우, 선수의 고의성이나 과실 유무와 관계없이 금지약물 검출이라는 결과 자체만으로 책임을 부과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수의 나이, 경험, 언어적 배경, 도핑교육 이수 여부 등 주관적 요소도 일부 고려되지만, 실제 실무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무과실이 인정될 정도로 매우 엄격한 책임이 부과되고 있다(Korea Anti-Doping Agency, 2021).
도핑 방지가 스포츠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도핑 위반 시 선수에게 부과되는 불이익은, 형벌의 유형으로 보아도 명예형 또는 몰수형에 해당할 만큼 중대하다.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에게 과도하게 부과하는 주의의무가 인격 존중이나 비례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Kwon, 2023). 도핑 규제의 엄격책임원칙이 스포츠의 공정성 확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어 왔으나,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선수의 인격적 가치와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Lawson과 Roberts 사례는 인격의 객체화 문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Lawson 사례는 2018년 도핑 검사에서 Trenbolone(비특정약물)이 검출된 선수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과정을 보여준다(CAS, 2020.03.09.). 현행 규정상 ‘비특정약물’이 검출된 경우, 선수 본인이 해당 위반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직접 입증해야 자격정지 기간이 감경될 수 있다. ‘특정약물’에서 위원회가 고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과 달리, 선수에게 훨씬 가혹한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이다. Lawson은 도핑 검사 19시간 전 식당에서 소고기 데리야끼 덮밥을 먹었던 사실을 근거로, 자신이 의도치 않게 호르몬이 주입된 소고기를 섭취했음을 입증해야 했다. 무죄 입증을 위해 그는 식당 영수증, 식당 업주 진술서, 전문가 보고서, 거짓말탐지기 결과 등 방대한 자료를 제출해야 했는데(Kwon, 2023), 이러한 요구는 선수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합리적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Roberts 사례는 인격의 객체화 문제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이다. Roberts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육상 1,600m 계주 금메달리스트로,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프로베네시드(S5. 이뇨제 및 은폐제) 양성 반응을 보였다. Roberts는 USADA 청문에서 여자친구가 인도 여행 중 복용한 항생제(Moxylong)의 성분이 자신과의 반복된 키스를 통해 미량 전달되었음을 해명했고, 여자친구와 약사, 전문가의 증언, 잔여 약 성분 분석 등 다양한 증거를 제출해 무과실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WADA는 Roberts의 판정을 ‘날조된 허위사실’로 간주하며 CAS에 항소하였다(CAS, 2018.01.25.; Kwon, 2023). CAS는 Roberts가 도핑 위반에 노출될 것을 예견하기 어려운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었음을 인정하며, “선수가 여자친구와 키스한 행위가 금지약물 검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예상할 수 없었다”고 판시했다.
이상의 판례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선수가 자신의 식습관, 일상생활, 심지어 사적인 인간관계까지도 외부적 증거로 소명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는 단순히 절차적 투명성을 위한 조치라기보다, 선수의 삶 전체를 규제적 시선 아래 두는 구조로 기능하며, 인격을 행위의 결과에 따라 평가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전형적 사례이다. 셸러에 따르면 인격은 어떤 방식으로도 외부에서 ‘완전히 파악’되거나 ‘기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체험된 경험들에서 인격을 이해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Geum, 2002)고 말하며, 인격은 그 자체로 경험을 구성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주체적 행위 속에서만 실현된다고 보았다.
인격은 결과가 아닌 행위 과정에서 드러나는 살아 있는 현상이며, 결코 행위의 결과나 정황 증거만으로 온전히 판단될 수 없다. 따라서 선수가 모든 식사마다 영수증을 보관하고, 음식의 성분을 분석하며, 사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문서화해야만 무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현실은,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 가치와 철학적 전제와도 충돌한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의 의도나 행위의 맥락과 무관하게 단일한 검사 결과만으로 일률적 책임을 부과하는 구조에 있다. 이는 무고한 선수에게도 예외 없이 과도한 입증 책임을 전가하며, 선수를 객체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Overbye(2016)의 연구에 따르면, 도핑 규제 강화는 많은 선수들로 하여금 일상생활 속에서도 불안과 강박을 경험하게 만들며, 스포츠의 자발성과 즐거움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Dimeo and Møller(2018)는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에게 ‘비인간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비인격적 규제는 우울증, 고립감, 심지어 자살과 같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규범 중심의 접근은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 가치인 인간의 전인적 성장, 자율성, 도전정신, 윤리적 성숙에 근본적으로 역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도핑 규제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규제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도핑은 단순히 규칙을 위반한 비윤리적 행위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자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계기이다.
막스 셸러의 인격 철학적 관점에서 도핑 문제는 가치를 직관하고 실현하는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의 자기 결단과 책임이 드러나는 윤리적 현상으로 재해석된다. 셸러에게 있어 윤리란 외적 규칙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감정적 직관을 통해 인식된 고차적 가치를 실천하는 인격의 내적 움직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핑은 개별 선수의 윤리적 실패가 아니라, 현행 스포츠 체계가 전제하는 가치 위계의 왜곡과 인격 침해를 드러내는 실존적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따라서 도핑 규제는 단지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적 기제로 기능해서는 안 되며, 스포츠가 전제하는 가치 위계와 인간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수반해야 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스포츠를 도전과 성장, 공정성과 존중, 자율성과 연대를 아우르는 ‘인격의 공동체’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셸러가 제시한 인격가치의 구현은 단순한 규칙 준수를 넘어서, 인격적 정신의 실현을 통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의 회복과 긴밀히 연결된다.
처벌에서 연대책임으로의 전환
막스 셸러의 연대책임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타자와 더불어 책임을 나누는 인격적 주체이다. 도핑 문제 역시 단순히 선수 개인의 윤리적 일탈로 환원될 수 없으며, 코치, 의료진, 팀, 연맹, 국가와 같은 공동체 전체의 맥락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규범은 이러한 연대적 차원을 배제하고, 개인의 주의의무만을 강조함으로써 선수 인격의 존엄을 침해하고 공동체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반도핑 규범은 개인 중심의 책임 구조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윤리적 책임을 공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환을 제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바로 안전공학 분야에서 발전한 STAMP(Systems-Theoretic Accident Model and Processes)이다.
셸러 철학과 STAMP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에서 출발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룬다. 셸러의 인격철학은 반도핑 규범이 지향해야 할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STAMP는 그 기준을 제도적 분석으로 구체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셸러가 ‘왜 선수의 인격과 공동체적 책임을 고려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면, STAMP는 ‘그 책임이 어떤 제도적 층위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가’를 분석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STAMP의 도입은 철학적 논의와 별개의 기술적 모델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셸러의 연대책임 원리를 반도핑 정책의 구조적 개선 논리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사고 분석은 도미노 이론, FTA(Fault Tree Analysis), FMEA(Failure Mode and Effects Analysis) 등 단일 원인이나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과 같은 잠재적 결함의 조합으로 사고를 설명해 왔으나, 사회적·제도적 요인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Reason, 2016; Leveson, 2004). 대표적으로 2015~2016년 국내에서 발생한 메탄올 중독사고는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파견고용, 다단계 하청, 관리와 감독 부재가 중첩된 구조적 실패의 결과였다(Goo et al., 2021; Seo et al., 2023). 이후에도 동일한 유형의 산업재해가 국내외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은, 기술적·관리적 대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기술적 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STAMP이다. STAMP는 사고를 단일 원인의 결과가 아닌 제어의 실패 이해하며, 안전 제약조건이 지켜지지 못했을 때 사고가 발생한다고 본다(Leveson, 2016). 여기서 제약조건은 기술적 장치에 국한되지 않고 규정, 정책, 조직문화, 재정적 조건, 사회제도 등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STAMP는 사고를 사회와 기술이 긴밀히 얽힌 사회기술 시스템의 관점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Leveson은 이러한 구조를 제어–피드백 루프(control–feedback loop)로 개념화하며, 상위 수준이 정책과 규정을 수립하고 하위 수준이 이를 실행하며, 다시 상위 수준으로 결과가 환류될 때 안전이 확보된다고 설명한다. 국내 연구(Goo et al., 2021) 역시 이를 “상위 결정과 하위 피드백을 연결하는 시스템 구조”로 규정하며, 사고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단절될 때 발생한다고 분석하였다.
STAMP는 교통·항공 등 안전공학 분야에서 이미 제도 개선을 이끈 바 있다. Staton et al.(2023)은 영국 케임브리지셔에서 발생한 10건의 치명적 교통사고를 STAMP 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개인의 운전 실수로 환원하지 않고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결함을 밝혀냈다. 분석 결과 도출된 60개의 권고 중 49개는 도로 설계, 단속, 응급 구조, 차량 관리 등 개별 행위자 수준의 개선책이었고, 나머지 11개는 안전 문화 강화, 기관 간 정보 공유 체계 구축, 응급·경찰·병원 간 협업 강화, 관리 시스템 재설계 등 시스템 차원의 개선책이었다. 이는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제도로부터 학습하기’를 중시하는 STAMP의 핵심 원리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도핑 문제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현행 반도핑 규범의 핵심 원리인 엄격책임원칙은 선수 개인에게 검출된 금지약물의 모든 책임을 부과하지만, 실제로 도핑은 코치, 의료진, 팀 문화, 스폰서, 국가 정책, 국제기구의 감독 체계 등 다층적 구조의 제어 실패에서 비롯된다(Naughton et al., 2025). McLean et al.(2023)는 호주의 네 가지 프로축구 종목(Australian Rules Football, Rugby League, Rugby Union, Soccer)을 대상으로 STAMP를 적용하여 반도핑 체계를 계층적 제어 구조로 재구성하였다. 연구 결과, 도핑은 선수 개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코치와 지원 인력의 압력, 클럽과 연맹의 관리 부실, 국가 정책의 불일치, 국제 규범의 집행력 부족 등 여러 층위의 제어 실패가 중첩될 때 발생함을 확인하였다(McLean et al., 2023).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피드백 루프의 부재이다. 현행 반도핑 규범은 도핑 사건이 발생하면 선수 개인을 징계하는 수준에서 종결되는 경우가 많아, 사건의 경험이 제도적 학습으로 환류되지 못한다. 그러나 STAMP의 관점에서 사건은 단순한 규범 위반이 아니라 사건 → 원인 분석 → 제도 개선 → 재적용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 속에서 제도와 문화를 보완할 기회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컨대 특정 지역에서 고기 오염으로 인한 도핑 사례가 반복된다면, 선수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식품 안전 기준 강화, 개최지 관리 개선, 검사 절차 보완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의료진 또는 주변인의 부주의로 인한 도핑 사례도 선수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교육·상담 지원 및 사전 고지 체계 등으로 환류되어야 한다. 이러한 피드백 구조가 마련될 때, 반도핑 체계는 단순한 적발·처벌 시스템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윤리적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
STAMP는 시스템의 구성요소를 기술적 장치에 한정하지 않고, 인력과 조직, 제도와 정책, 그리고 문화까지 포함한다. 이 관점에서 도핑은 특정 선수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제어 실패이기 때문에 반도핑 규범은 개인 중심의 책임 구조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규범 체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또한 도핑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수만 제재할 것이 아니라, 반도핑 기구와 체육 공동체 전체가 코치·의료진·팀·연맹·국가 등 각 층위의 책임을 함께 검토하고, 그에 따른 개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STAMP가 제시하는 피드백 순환 구조를 반도핑 규범에 접목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체계적 학습과 윤리적 신뢰가 강화될 것이다.
결국 반도핑의 미래는 개인의 주의의무와 처벌에 의존하는 협소한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셸러의 연대책임 철학은 공동체 전체가 윤리적 책임을 공유한다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STAMP 모델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제도적 틀을 제시한다. 이 두 관점이 결합될 때, 반도핑 규범은 단순한 규칙 준수를 넘어 인격적 존엄과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하는 윤리 질서로 전환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핑 방지는 개인의 일탈을 제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성찰과 개선을 반복하는 학습 체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와 인격의 통합적 접근을 통해, 스포츠는 진정한 ‘인격의 공동체(Gemeinschaft von Personen)’로 자리매김하며, 공정성과 존중, 자율성과 연대가 조화를 이루는 윤리적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론
스포츠에서 도핑 문제는 개인의 비윤리적 선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 현상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금지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는 분명한 도덕적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반도핑 규범을 다루는 상당수의 사례들은 개인의 도덕성보다 제도적 결함과 구조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오염된 소고기 섭취, 통증 완화를 위한 파스 부착, 혹은 일상적 신체 접촉과 같은 행위로 인해 비의도적으로 도핑에 적발된 사례들이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기술적 시스템의 허점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적 맥락에서 선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인식과 판단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불명확한 규정, 불충분한 교육, 의료 정보의 비대칭, 복잡한 검사 절차 등은 선수의 윤리적 숙고를 제약하고, 행위의 도덕적 의미가 실질적으로 인식되지 못하게 만든다. 셸러의 인격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도덕적 감응과 가치 인식이 마비된 상태, 즉 인격이 스스로의 도덕적 판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틀을 제시한다. 셸러에게 인격은 감정과 가치 인식의 중심이며, 도덕적 행위란 외적 규율의 준수가 아니라 내면의 가치질서에 대한 응답이다(Lee & Lee, 2024). 그러나 반도핑 규범, 특히 ‘엄격책임원칙’은 행위의 동기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과만으로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인간의 인격적 판단 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이 원칙 아래에서 선수는 더 이상 도덕적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규범의 대상이자 처벌의 객체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제도적 형식주의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인 공정성을 약화시키며, 결국 인격의 가치를 압도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도핑의 본질적 문제는 ‘성취의 가치’가 ‘도덕의 가치’를 압도한 결과가 아니라, 제도가 ‘인격의 가치’를 억압하는 윤리적 구조의 문제로 설명될 수 있다. 셸러가 말한 인격의 도덕적 존엄은 바로 이 억압적 구조 속에서 회복되어야 하며, 도핑 방지는 더 많은 규제나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윤리적 인식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복원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때 STAMP 모델은 이러한 전환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공한다. STAMP는 사고를 단일 행위의 실패가 아니라 제어 구조의 붕괴로 해석한다. 이 관점을 반도핑 체계에 적용한다면, 문제의 초점은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제도의 학습 구조로 옮겨진다. 상위 수준의 국제기구는 금지약물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식품안전과 보건 체계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간 수준의 국가도핑방지기구와 연맹은 교육, 검사, 상담 절차를 통합하여 운영 가능한 규범으로 전환해야 하며, 하위 수준의 팀과 의료진은 선수의 일상적 환경 속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 분석 → 개선 → 재적용의 순환 속에서 제도를 학습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피드백 구조가 작동할 때, 반도핑은 통제의 시스템을 넘어 학습하는 윤리 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셸러의 인격주의와 STAMP의 시스템 사고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셸러가 도덕의 기원을 인격적 감응과 연대에서 찾았다면, STAMP는 윤리적 학습이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기술적 언어를 제공한다. 두 관점이 만날 때 반도핑은 단순한 규제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과 공동체적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인격적 시스템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스포츠윤리는 법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통제의 효율성이 아니라 신뢰의 깊이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반도핑의 궁극적 목적은 위반자를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도핑 사건은 공동체가 자신을 성찰하고, 제도의 윤리적 방향을 다시 정립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도덕이 제도 안에서 숨 쉬고, 제도가 인격을 존중하는 구조를 갖출 때, 스포츠는 다시금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반도핑 규범을 개인의 일탈이나 경기 공정성의 문제로만 다루어 온 기존 논의에서 벗어나, 선수의 인격적 존엄과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철학적 차원에서 재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특히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의 인격적 주체성을 어떻게 제한하는지 비판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기존 공정성 중심 담론과 차별성을 갖는다. 다만 본 연구는 문헌 고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 반도핑 제도를 경험한 선수, 지도자, 의료진, 도핑방지기구 관계자 등의 경험을 직접 분석하지 못했다는 제한점을 지닌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반도핑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체험되고 있는지를 질적연구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엄격책임원칙이 선수의 인격적 주체성, 입증 부담, 낙인 경험, 제도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AUTHOR CONTRIBUTION
Conceptualization: Nayoung Kim, So-jung Kim, Formal analysis: Nayoung Kim, Methodology: Nayoung Kim, Writing-original draft: Nayoung Kim, Writing-review & editing: Nayoung Kim, So-jung Kim
Nandrolone은 19-노르테스토스테론 계열의 합성 남성호르몬(안드로겐) 및 동화성 스테로이드(AAS)이다(Furman, 2017).
Boldenone은 테스토스테론 유도체의 하나로, 안드로겐 수용체 작용을 갖는 합성 동화스테로이드이다(Papich, 2020).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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