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연구방법
대한체육회 첫 번째 통합 이전 체육계 역사적 배경
1. 체육단체의 재건과 창립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 이후 在京體育人들은 中央基靑을 중심으로 빈번한 회합을 위하여 조선체육회가 일인들의 손에서 해방된 지 7년 만에 다시 조직을 갖기 위해 조선체육동지회를 구성하여 대한체육회 발기를 하였다(KSOC, 1965, Shim, 1977).
1945년 8월 15일 광복 3개월 후인 11월, 조선체육회의 재건, 1946년 조선올림픽위원회 조직 그리고 각종 경기단체의 통괄기관을 완비하여 체육 재건에 활발한 기초작업 전개와 각자의 활동은 사회혼란과는 대비적으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었다(KSOC, 1972).
2. 정치인과 체육단체의 조우
3. 체육단체의 부정적 인식 확산
문교부장관은 이 동대문사단을 완전히 개편할 용의가 있는지 만일 이것을 개편할 용의가 없으시면 여기에 지급될 보조금을 대폭소급해서 개편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할 용의는 없는지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5).
우리가 예산조절을 할 때에 보면 다음과 같은 점에 재고와 또는 소감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내가 보기에는 국제적으로 체육진흥책을 세울 그런 경우에는 별문제이지만 지금과 같은 체육계에 보조금을 줄 경우에는 한 번쯤 소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체육회자체에 정신혁명을 먼저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65년에는 5,000만원 가지고 그만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정신혁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줄 필요도 없습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5).
지금 어떤 지역에 체육관 하나를 만드는 이런 것 보다도 지금 전체 국민들의 교육 문제가 더 소중해요. 전체 국민의 교육문제를 소외하고 어떤 지방에 실내체육관을 만들기 위해 6,000만원이라는 많은 보조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5).
국민체육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본 위원이 생각하기에는 학교체육시간이라는 것은 공하나 내줘 가지고 다 채우고 있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선수를 발견하여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방안에 대한 연구들이 필요합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5).
문교부장관(권오병) : 체육진흥개선책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국민체육 인구에 대한 저변 확대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역시 학교체육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체육진흥을 꾀해야 되는 것입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5).
광복 직후 세 단체 현황과 통합
1. 세 단체의 창립과 활동
해방과 동시에 한국의 체육계는 조선체육회를 재건하고 체육의 민주화·대중화로 대변되는 신체육 이념을 수용하여 국민의 체력증진과 체육을 통한 국권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https://www.much.go.kr/L/rYUwul4RsG.do).
사단법인 대한체육회는 체육운동을 범국민운동화하여 학교체육 및 사회체육의 진흥으로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시킴과 아울러, 아마튜어경기단체를 통솔ㆍ지도하고,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하여 국위선양을 도모함으로써 민족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KSOC, 1972).
대한학교체육회는 체육교사의 자질 향상과 학원체육의 정상화를 통한 국민체위 향상과 스포츠 인구의 저변 확대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Lee, 2000).
Fig. 3.
Survey Report on Health and Physical Education in Korean Schools(Korean School Sports Association, 1968)

2. 세 단체의 분열
국민체육진흥은 국민보건과 국민체위 향상에 대한 시책이 선행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체육계의 현실은 체육이 일반민중의 관상용으로 전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각종 경기대회와 국제경기대회 및 파유선수 훈련에만 급급하고 법시행 후 4년이 경과한 오늘에도 국민체육진흥에 대한 법시행 및 체육단체의 체계화 등 기본시책마저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Ministry of Education, 1966).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분규는 「아시아」경기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같은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터져 나왔고 양단체간의 싸움은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출전선수들의 연판장소 등으로 그 절정에 달했었다(Korea JoongAng Daily, 1968.12.14).
당시 체육회는 경기에 집중했지만 KOC는 차기 아시안게임 유치에 온 신경을 쏟으며 두 단체는 사사건건 반목했다. 손 선생은 두 단체의 반목을 삭발로 웅변하며 체육계의 통합을 무언의 메세지로 전했던 것이다(Sportsseoul, 2015.2.25).
“올림픽에 어중이 떠중이 딸으지말라” 「체육은 신성하다」고하여 우리도 그렇게 명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체육계를 볼 때 한심한 생각이 아니날 수 없다. 신성의 두 글자에 숨어서 썩어빠진 정치와 挾雜謀利(협잡모리) 행위가 감행되고 있다. 외국원정을 가게되면 그것을 奇貨(기화)로 삼아 돈버리가는 체육인이 되고 말았다. 그마나도 정치성을 띠우지 않으면 원정의 생각조차못할 정도니 이것참말 울면서 겨자먹는격이다. 금반 올림픽대회 파견문제만하여도 이 무슨 부끄럽고 쑥스러운 짓인가. 국민 전체에 얼굴을 들 염치가 없으며 깨끗이 기권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든다. 관계인사들은 우리 체육인들을 상품화하지 말라! 시골잔치집 찾아가는 거지처럼 어중이 떠중이 딸아오지 말라. 제발 役員(역원)이니하고 딸아와서 엉뚱한 사업만하고 돌아와서는 제일생색을 내는 그 따위 행동은 삼가달라.<국민에게 미안한 선수>(The Dong-A Ilbo, 1956.10.31).
체육교육의 현장에 종사하는 체육교사 중심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이 뒤로 전국규모의 학도체육대회를 가지며 본회 사업과 중복되는 결과를 빚어왔다(KSOC, 1990).
대한학교체육회는 학생의 전인적 교육을 위해 수업 결손을 초대한 방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앙의 경기 통할단체가 주최하는 종목별 경기에 연간 출장횟수를 제한하거나 자제시키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Lee, 2000).
Table 1.
Sports Organization Status(Ministry of Education, 1966)
Table 2.
Status of government subsidies for sports organizations (Ministry of Education, 1966)
3. 세 단체의 통합
제2조(사회단체의 정의) ① 본법에서 사회단체라 함은 정치성이 없는 구호단체, 학술단체 및 종교단체와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단체를 말한다. ②~④생략 ⑤ 제1항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단체라함은 다음과 같다. 一. 반공정신을 선양 계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二. 신생활과 국민도의 앙양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三. 국제적인 유대를 가진 민간외교단체. 四. 혁명과업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단체(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49285948).
대한체육회 및 그 산하경기단체에서는 작년 四月 一九일 이후 그 기구를 개편함에 있어 대부분 자유당계의회장을 민주당계의 정계요인으로 대치한바 있는데 五 一六 군사혁명 이후 그들 회장은 사실상 회장직무를 수행못하는 실정에 있으며 체육인을 회장으로 추대한 수개 경기단체만이 정상적인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올림픽 해당종목단체 회장들로 구성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도 완전 마비 상태에 놓여 있어 조속한 개편이 요망되고 있다(The Dong-A Ilbo, 1961.6.6).
문홍주(문교부장관) : 체육행정은 지금 KOC 그리고 대한체육연합회 학교체육회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데 KOC는 특수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독립이 되어있는 것 같고 학교체육회와 대한체육회도 현재에는 각기 맡아 있는 부문이 다른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잡음이 일고 있기는 합니다. 이것을 종합해서 일원화하도록 연구를 하겠습니다. (Ministry of Education, 1967).
김상현위원: 대한체육회에 대해서 제가 한 말씀을 드려야 되겠는데요. 이번에 아세아 올림픽대회인가 뭔가 놔두고 여러 가지 잡음이 있습니다마는 근본적으로 체육행정의 일원화... 이 체육인이라고 하면 우리가 이 「스포츠맨」이라고 하면 정치인들도 하는 말이 참 우리가 「스포츠」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는데 적어도 체육하는 사람들이 거기에도 파벌작용이 일어나가지고 中傷하고 謀略하고 이런 실정이 되어간다는 것은 나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봅니다.
장관께서 지금 이 KOC다 대한체육회다 학교체육회다 하고 여러 가지 체육회에 대해서 많이 있는데 이 체육회의 일원화를 위해서 장관이 어떠한 斷案을 한번 내릴 용의가 없는지 거기에 대한 장관께 소신을 제가 말씀을 드리고 또 하나는 이번 이 아세아「올림픽」대회 관계로 가는데 오늘 신문에도 났읍니다마는 뭐가 났는냐하면 연구조사비다 해가지고 조사원인가 뭔가 해가지고 KOC에서 이십명을 보내는데 대한체육회에서도 또 이십명을 오백만원으로 딱 정해가지고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용은 원래 KOC하고 대한체육회하고 합의해 가지고 단일조사원을 구성을 해서 보내려다가 그 협상이 안되어 가지고 깨저버렸어요. 그러니까 KOC에서 이십명을 보낸다하니까 또 여기서도 사람을 이십명을 보낸다 이런 실정에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대단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백만원이 적다면 적지만 이것 국민들이 낸 혈세인데 이것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조사원이면 조사원 이렇게 가면 우리가 학교체육회나 대한체육회나 단일화해서 가면 가지 완전히 목적이 똑같은데 조사원 단체를 둘로 해서 간다는 것은 이것은 국제적으로 큰 체면에 관계가 있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장관께서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적어도 조정하고 이 문제를 정리해야 될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관이 직접적으로 중재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갖다가 조정해서 원만한 타협점을 발견해 가지고 이와 같은 난립을 방지하는 이러한 것을 강구할 용의가 없으신지 또한 당연히 해야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만 말씀드립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6).
특수체육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문교부에서 강제로 해산시켜가지고 없애버렸습니다. 일원화가 언제 반드시 된다 이렇게 단언하지는 못하겠읍니다마는 여러 가지 체육회를 하나씩 해산시키고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세아「올림픽」에 이십이명을 KOC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는 것은 저희들이 압니다마는 대한체육회에서 이십이명을 보낸다는 것은 실무자들의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합니다(Ministry of Education, 1966).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분규는 「아시아」경기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와 같은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터져 나왔고, 양단체간의 싸움은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출전선수들의 연판장 소동으로 그 절정에 달했었다. 이 같은 북새통 속에서도 학교체육회는 「학교체육연구」라는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전국체육대회와 비슷한 규모의 전국학도체육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선수등록마저 주장함으로써 체육행정을 일대위기로 몰아넣었다(Korea JoongAng Daily, 1968.12.14).
체육기구 통합은 1968년 「스포츠」계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체육단체간의 마찰과 알력이 통합의 주요인이었다(Korea JoongAng Daily, 1968.12.14).
멕시코올림픽을 앞둔 1968년 당시 그는 흔들림 없이 한국체육의 정통성을 주장한 결과 통합회장으로서 올림픽 기능과 학교체육 영역까지 통합할 수 있었다. 그는 생활체육도 엘리트 울타리 안에서 얼마든지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오히려 시너지효과가 크다고 늘 주장하곤 했다(Lee, 2015).